'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아니한 새로운 소식'
표준국어대사전은 뉴스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소식이 전해지지만 뉴스라는 범주에 들려면 일단 새로워야 한다.
이에 비춰보면 삼성전자의 실적을 다룬 기사는 이제 뉴스로 분류하기도 민망해졌다. 1등이 또 1등을 한 것이라 새로움이 덜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매분기 역대 최대의 실적을 내고도 실적 자체만으로는 뉴스 대접을 받지 못하는 '웃픈' 현실에 처했다.
◇'벌써 4분기째' 삼성전자의 신기록
4일 비즈니스워치가 집계한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S 등 삼성 주요 계열사 9개사의 영업이익은 총 16조30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조2138억원)에 비해 6조890억원 늘었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60%에 달한다.
주역은 단연 삼성전자다. 이번에는 주춤할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을 깨고 보란듯이 15조642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역대 최대기록을 썼다. 지난해 2분기부터 시작해 벌써 4분기째 신기록 행진이다.
반도체가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4%(11조5500억원)에 달했다. 계절적 비수기에도 서버에 탑재하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을 톡톡히 봤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하나를 팔 때마다 제품값의 절반이상(55.6%)을 이익으로 남기는 저력을 보여줬다.
스마트폰 사업도 지난해 2분기 이후 가장 좋은 3조7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 3월 갤럭시 S9과 S9+ 신모델을 조기 출시하고 갤럭시 S8 등 기존 모델도 꾸준히 팔리면서 실적이 호전됐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와 생활가전의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영업이익이 각각 4100억원, 2800억원에 그쳤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애플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주문을 줄인 데다 액정표시장치(LCD)도 공급과잉 우려로 가격 하락압력이 커졌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역대 최대의 삼성전자 실적이 언감생심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기·SDI 등 부품 계열사도 기지개
다행인 것은 부품 계열사들이 체력을 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기는 고사양 카메라모듈과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Multi-Layer Ceramic Capacitor) 덕분에 지난해 1분기(255억원)의 6배나 되는 154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MLCC는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로 불리는 부품으로 전류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만큼만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가 쓰이는 곳이면 거의 다 들어간다. 최근 고사양 스마트폰과 차량에 쓰이는 전장용 수요 등으로 MLCC 값이 뛰면서 일본 무라타에 이어 세계 2위를 점하고 있는 삼성전기가 수혜를 입었다.
삼성SDI는 72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4분기(1186억원)에 견주면 39% 줄었음에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증권사들은 삼성SDI의 영업이익이 7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해왔다. 올해 1분기에는 자동차전지 사업에서 충당금을 쌓느라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런 부담을 털어낸 2분기에는 소형·중형 전지사업과 전자재료사업 모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분기까지 9분기 연속 적자였던 것에 비춰보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최악은 피한 건설·중공업
건설·중공업 계열사들도 나쁘지 않은 실적을 냈다.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부문의 실적 개선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2000억원을 넘었다. 지난해 4분기에 견주면 26% 줄었으나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52% 증가한 실적이다. 건설부문이 삼성전자 공사물량으로 양호한 수익성을 보인 가운데 상사부문도 트레이딩 영업 호조로 실적개선에 도움이 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중동을 비롯한 해외 프로젝트에서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이후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펴면서 매출이 줄곧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에도 21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기대비 212%, 전년동기대비 71% 각각 늘어난 수치다. 철저한 프로젝트 점검과 관리로 원가절감에 주력하면서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4분기에만 6000억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충격을 안긴 삼성중공업은 올해 1분기에는 적자규모를 595억원으로 줄였다. 조선업 불황으로 매출은 줄었는데 고정비는 꾸준히 나가고 강재가격 상승까지 덮쳐 걱정을 키웠으나 실적 발표 이후 최악은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들은 삼성중공업이 올해 1분기 7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삼성SDS는 언제나처럼 듬직했다. 신성장사업인 물류부문에서 영업손실을 냈지만 IT서비스 부문의 호조에 힘입어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8억원(24%) 늘었다.
아쉬운 것은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들의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 한곳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점이다. 집계 대상에 포함한 9개사 가운데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이 96%에 달했다.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이익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 그 중에서도 기둥역할을 하는 반도체가 흔들린다면 삼성 전체가 호된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삼성의 실적이 뉴스가 되는 건 어쩌면 그 순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