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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①프롤로그-오빠회사는 어떻게 됐을까

  • 2018.06.15(금) 11:30

가족승계의 정석…순환출자·일감몰아주기
중년이 된 3·4세…달라진 환경에서의 승계 해법은

소유와 경영 분리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가업 승계는 숙명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상속후 해체된 쌍용·기아·해태의 역사는 이 말을 증명한다. 창업주가 일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서 '제2의 창업'을 일군 기업도 적지 않다. 한국 자본주의가 본격 열린 지 60년을 넘어서면서 이제 명실상부 3·4세 경영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잘 모른다. 3·4세가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는 호사가의 관심을 넘어선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워치가 그들을 탐구하는 이유다. [편집자]

 

 

"잘봐놔 오빠 회사 될 거니까."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열살때 대한항공 비행기 조종석에서 오빠에게 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조 전무의 오빠 조원태 사장은 2003년 한진그룹 계열사 차장으로 입사 후 4년 만에 대한항공 임원(상무보)이 됐고, 2016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을 거쳐 작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계열사 경력을 포함해도 그가 국적항공사 사장 직함을 얻는데 걸린 기간은 입사 후 14년.


총수일가였기에 가능한 초고속 승진이다. 그렇다면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은 그의 회사일까. 대한항공은 25조2000억원의 자산(2018년 1분기 말 기준)을 가진 거대 회사다. 그러나 자산의 86%는 빌린 돈(부채)이며 나머지 14%만 자기 돈(자본)이다.

 

대한항공 자산의 대부분은 채권자가 우선 권리를 가진다. 회사나 주주들이 온전히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14% 중에서도 조 사장이나 그의 가족이 직접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몫은 거의 없다. 한진 총수일가의 대한항공 지분은 단 0.01%이기 때문이다.

 

한진 총수일가와 대한항공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는 그들이 지분 24.79%를 보유한 한진칼이다. 이 회사가 대한항공 지분 29.96%를 가진 최대주주다. 따라서 총수일가는 한진칼을 통해 대한항공 지분 7.42%를 간접 소유하고 있는 셈이며, 이를 대한항공 자산 중 주주몫 14%에 대입하면 딱 1%다. 그 이상의 몫을 주장하려면 주주와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 순환출자·일감몰아주기의 배경

대한항공을 놓고서 누구 것인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대한항공처럼 한 기업이 성장해 수십 년을 이어가면 어느 한 사람이 온전히 지배권을 행사할 수준의 절대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작은 회사를 세계적 회사로 키우는 과정에서 다른 주주의 자본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채권자로부터 돈도 빌려야 한다. 

 

또 세대를 넘어가면서 상속과 가족 간 분배 단계에 이르면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 줄어든다. 이 때문에 선진국의 기업문화는 자연스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고민해왔다. 미국은 물론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고민의 대상으로조차 여기지 않았다. 한 개인이 설립한 회사를 가족이 물려받고 세대를 넘어 손자, 증손자가 이어받고 쪼개서 나눠가지는 가족경영을 당연시 해온 것이다. 

 

창업주는 스스로 절대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되어 회사를 만들었지만 커져버린 회사를 계속 소유하고 경영하고 물려주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대안이 필요했다. 계열사를 동원해 다른 계열사를 간접 소유하는 형태가 선택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상징하는 순환출자 또는 무늬만 지주회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창업주에서 2세, 다시 3세로 물려주기 위해선 세금을 내거나 지분을 매입할 종자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은 지분으로 다수의 회사를 지배하는 이러한 소유구조에서는 배당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조원태 사장이 한진칼 지분 2.34%로 받은 연간 배당금도 소득세를 제외하고 1억원 남짓이다. 어지간한 가정의 가계소득을 훌쩍 넘는 돈이지만 승계를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턱없이 부족하다. 배당수입만으론 부친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물려받는데 필요한 세금(약 1000억원) 마련에만 수백 년 걸릴 판이다.

 

그래서 회사를 물려받아야할 3세와 4세는 배당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상장회사를 만들어 대주주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 한진그룹의 IT시스템을 담당한 유니컨버스, 비행기내 면세품을 판매한 싸이버스카이의 주주명부에 조원태·조현아·조현민 단 세명만 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만 아는 비밀땅굴을 판다는 의미에서 터널링(Tunneling)이라고도 하는 일감몰아주기는 기업규모를 떠나 ‘안 하면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전형적인 기업 승계 종자돈 마련의 수단이 됐다. 단순한 종자돈 창구를 넘어 아예 지배구조 꼭대기에 올라서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렇게 하면 선대의 지분을 물려받을 때 세금 낼 고민도 할 필요가 없으니 한 차원 높은 방법이다.

순환출자와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한국기업 대표적 지배구조 문제는 소유와 경영의 구분을 고민하지 않았던 우리 기업문화의 산물이다.

 

 

◇ 당연했던 승계…그러나 달라진 시대의 승계

어느덧 주요 그룹의 회장(2세 혹은 3세)들은 70대를 넘어 80대에 접어들었고 그들의 자녀(3세 혹은 4세)도 중년을 향하고 있다. 적지 않은 3세와 4세들이 조원태 사장처럼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에 참여하며 이른바 승계수업을 받는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대기업 가운데 경영권과 지분승계를 모두 마무리 지은 곳은 많지 않다. (☞관련기사 대기업 3·4세 지분승계 얼마나 이뤄졌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는 한 3·4세는 앞으로도 승계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나가야한다. 하지만 선대와는 다른 세상에서 승계를 준비해야한다. 순환출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배당확대를 요구하는 기관투자자의 목소리는 커지고, 일감몰아주기를 더 이상 두고보지 않겠다는 시대에서 3·4세는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승계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응원군이었던 공익재단이 도마에 오르고, 대기업의 우호주주였던 국민연금이 공개서한을 보내고, 무엇보다 재벌가 자녀들의 범법행위와 갑질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자금출처와 경영능력 모두를 증명해야하는 시대. 재계 3·4세 그들은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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