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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⑲하이트진로, 순탄했지만…험난한 앞길

  • 2018.07.04(수) 14:30

박태영 부사장, 유학시절 취득한 서영이앤티 통해 그룹 지배
공정위 "각종 편법으로 부당 지원"…칼자루 쥔 檢 수사 주목
승계 마무리 국면에서 변수…경영 성과 입증도 또다른 관건

돌이켜보면 하이트진로 3세 승계의 청사진은 매우 창의적이고 계획적이었다. 

 

가업을 물려받을 3세 박태영(41) 하이트진로 부사장은 대학 졸업 즈음에 맞춰 서영이앤티라는 생소한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며 승계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첫걸음 이후 치밀하고 신속하게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어갔다. 서영이앤티를 통해 그룹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를 지배하는 기반을 갖추자 회사에 정식 입사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새 시대를 기약하며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물론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승계 과정은 순탄했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가업을 대물림했다는 의혹부터 계열사의 일감 지원을 받아 자산을 불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고 이제 칼자루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쳐 검찰이 쥐고 있다.

박 부사장은 화려했던 아버지의 시절이 저물어가는 무렵에 경영 일선에 섰다. 창업주 고(故) 박경복 회장의 차남이자 2세 경영인이었던 박문덕(69) 회장은 하이트맥주를 단숨에 국내 1위로 끌어올린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시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새 선장이 된 박태영 부사장은 경영자로서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까지 지고 있다.

 

◇ 박태영, 서영이앤티 통한 그룹 지배 체제

 

박태영 부사장은 지난 2008년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마치기 직전 그는 뜬금없이 삼진이엔지(현 서영이앤티)라는 맥주 냉각기 제조 및 판매 회사를 인수하면서 주목받았다. 서영이앤티는 하이트 관련 매출이 대부분이어서 숨겨진 관계기업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업체다.

 

박 부사장이 지분 73%를 인수하면서 서영이앤티는 하이트진로그룹 총수일가 3세 형제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가 됐다. 이미 그의 동생 박재홍 하이트진로 전무가 서영이앤티 지분 27%를 갖고 있었다.

 

박 부사장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바로 하이트진로그룹에 발을 들이지 않고 엔플랫폼이라는 경영컨설팅 업체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익혔다. 그가 이 회사에 근무하는 기간 서영이앤티는 점점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로 변모해갔다.

 

우선 서영이앤티는 그룹 핵심회사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빠른 속도로 늘렸다. 애초 서영이앤티가 직접 보유한 하이트맥주 지분율은 0.71%에 불과했다.

 

2008년 아버지 박문덕 회장이 개인회사 하이스코트를 서영이앤티에 무상증여하자 서영이앤티가 컨트롤하는 하이트맥주 지분율이 10.52%로 높아졌다. 하이스코트가 당시 하이트맥주 지분 9.81%를 보유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하이트맥주 지분 9.81%를 간접 증여한 셈이다.

 

이듬해 2009년 박문덕 회장 소유의 또 다른 회사 근대화유통을 서영이앤티가 흡수합병했다. 근대화유통도 하이트맥주 지분 0.49%를 가진 회사였다. 서영이앤티가 컨트롤하는 하이트맥주 지분율이 11.01%로 또 한 번 높아졌다.

 

같은 해 하이트진로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서영이앤티는 자회사 하이트맥주 주식을 현물출자하고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식을 받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27.66%로 더 높였다. 

이로써 박태영 부사장이 대학생 시절 취득한 서영이앤티란 회사는 그룹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의 2대주주가 됐다. 결국 그 모든 것은 박태영 부사장→서영이앤티→하이트진로홀딩스→하이트맥주 순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아직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최대주주는 박 부사장의 아버지 박문덕 회장(29.49%)이지만 현재의 구도만으로도 3세 경영체제를 위한 지배구조는 안정적으로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 공정위, "각종 변칙으로 부당 지원" 검찰 고발

박 부사장은 이러한 지배구조가 완성된 이후 2012년 경영관리실장(상무)이라는 직함으로 하이트진로에 입사했다. 정부가 하이트진로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건 이즈음부터다.

 

먼저 나선 건 국세청이다. 국세청은 박 회장이 하이스코트를 서영이앤티에 무상증여한 게 사실상 박 부사장 형제에게 증여한 것과 같다며 327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하이트진로 측은 서영이앤티가 이미 법인세 307억원을 냈기 때문에 또 증여세를 물리는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1심에서는 하이트진로가 패소했지만 지난 2016년 대법원이 하이트진로의 손을 들어주면서 마무리됐다.

뒤를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조사에 나섰고 올해 1월 결과를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정위 발표가 재벌 저격수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일감몰아주기 제재라는 사실이다. 본보기 차원에서 높은 수위의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는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공정위는 "장기간에 걸쳐 법 위반을 인지하고도 각종 변칙적인 수법을 사용해 부당 지원을 했다"며 하이트진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례적으로 3세 경영인 박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에 각각 79억 5000만원, 12억 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제 칼자루는 검찰이 쥐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관련 부서에 배당했지만 현장 조사 등 본격적인 수사에는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하이트에서 '필라이트·참이슬'로…경영 능력 입증 과제

박 부사장 입장에서는 일단 검찰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부사장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승계 작업도 제동이 걸렸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박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가 자체적으로 안건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는 박 부사장에 대한 여론악화 등을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압박 외에도 박 부사장은 당장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아버지 박문덕 회장은 과거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맥주브랜드 '하이트'를 크게 성공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진로를 인수하며 소주 시장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이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국내 주류 소비 감소와 수입 맥주의 선전 등의 악재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문덕 회장이 2014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고, 박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서기 시작했다.

이후 하이트진로는 지난 2016년 '올 뉴 하이트'를 내놨다. 이름만 빼고 다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을 들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새로 내놓은 발포주 필라이트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소주 부문에 더욱 힘을 싣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맥주 공장을 매각하겠다고 했는데 올해 3월 이를 철회하고 기존 공장에 소주 설비를 넣었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소주 시장 1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결국 박 부사장은 아버지로부터 하이트맥주의 경쟁력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필라이트와 참이슬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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