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결정의 양 당사자인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H&L 두 회사 모두 계열사 간의 거래를 통해 성장해 그 과실을 지배주주 일가만 향유한 '회사기회 유용'의 사례다."
2008년 10월 당시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를 이끌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림코퍼레이션(이하 대림코퍼)과 대림H&L 합병의 부당성에 대해 대림코퍼 이사회에 질의한 공문의 일부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우고 합병을 통해 결국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림의 후계승계 과정은 후계자의 비상장 계열사에 그룹의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성장한 계열사를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프로세스를 밟았다.
여론이 모두 삼성 등 10대 대기업의 승계에 주목하는 사이 재계 18위(올해 5월1일 기준 공정위 대규모기업집단 순위) 대림은 이해욱 부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그룹 승계를 마무리 지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증여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 대림코퍼 지배하는 자 대림그룹을 지배한다
대림의 지배구조는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대림코퍼가 대림산업을 지배하고, 대림산업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따라서 대림 총수일가는 대림코퍼만 지배하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승계의 중추인 셈이다.
대림코퍼는 대림산업의 원재료 수입을 시작으로 대림산업 유화사업부 내수영업부문을 인수하는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계열사에서 하던 업무를 넘겨받거나 계열사를 통해 매출을 일으키는 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이해욱 부회장의 부친 이준용 명예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회사다.
2008년까지 이해욱 부회장은 대림코퍼의 주식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대림코퍼 주주명부에 이해욱 부회장이 등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곳이 바로 김상조 위원장이 과거 지목했던 대림H&L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가진 대림H&L과 대림코퍼의 합병으로 2대 주주(32.12%)에 올랐다. 합병비율은 1대 0.7이었다.
대림코퍼가 대림산업의 원재료 수입을 주로 했다면 대림H&L은 해운중개업체로 대림코퍼의 수입 과정에 관여해 매출을 올렸다. 자연스레 매출액의 91%는 대림산업, 대림코퍼 등 계열사에서 나왔다.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 회사는 대림코퍼와 합병하기 직전인 2007년 매출액 2015억원, 영업이익 12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불과 5년만에 몸집을 4배로 불린 것이다.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증여세 납부 없이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마련했다. 승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개인회사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오너 일가는 또 한번 같은 방식을 활용한다.
이번에 등장한 곳은 대림I&S다. 시스템통합(SI)업체로 역시 이 부회장이 99.2% 지분을 가졌다. 계열사 매출 비중이 평균 80%대에 달했다.
2015년 이 회사를 대림코퍼와 합병하자 이 부회장은 명실상부 대림코퍼의 최대주주(52.3%)로 올라섰다. 이렇게 단 두번의 합병으로 이해욱 부회장으로의 승계는 마무리됐다. 이후 이준용 회장은 대림코퍼 잔여지분 42.7%를 사회에 환원했다.
◇ 승계 주축 '대림코퍼·대림H&L·대림I&S' 닮은꼴 성장 공식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회사에 계열 일감을 몰아준다. 이렇게 키운 회사는 알짜회사로 변모한다. 꽤 괜찮은 조건(합병비율)으로 그룹 지배권을 가진 회사와 합병한다.
대림은 오너의 지배력을 키우는 승계의 공식과도 같은 절차를 그대로 밟았다. 어떤 대기업은 이 알짜회사를 승계의 실탄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림은 지배권과 맞바꿨다. 무엇보다 증여세를 내지 않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승계 이슈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부회장의 승계과정에 등장해 중추 역할을 했던 회사는 크게 세 곳이다. 대림코퍼와 대림H&L, 대림I&S다. 모두 계열 매출에 힘입어 성장한 곳이다.
특히 대림I&S의 경우 앞서 이 부회장이 100% 소유하는 과정에서도 그룹 차원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99년 이 부회장은 대림I&S 주식 49만8600주(49.86%)를 계열사인 서울증권(현재 유진투자증권)으로부터 주당 3000원에 사들인다.
이어 삼호가 보유한 대림I&S의 주식 50만주를 대림I&S에 매각(주당 4315원)하고, 대림I&S는 이 자사주를 소각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 부회장은 대림I&S 지분 100%를 확보했다. 이 부회장이 당시 매출액 485억원의 대림I&S를 접수하는데 들인 돈은 불과 15억원. 훗날 대림코퍼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발판 치고는 값싼 금액이다.
공정위는 이듬해 서울증권과 삼호가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도해 특수관계인을 지원했다고 판단, 대림산업 등에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과징금 48억원을 부과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승계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 3세 승계는 끝났지만, 경영능력은 여전히 시험대
승계는 한참 전에 마무리됐지만 김상조 위원장의 서슬은 여전히 퍼렇다. 대림이 올해 초 경영쇄신계획을 발표하면서 에이플러스디의 지분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에이플러스디는 이해욱 부회장과 아들 이동훈이 각각 지분 55%와 45%를 갖고 있는 회사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알짜 회사다. 대림의 호텔사업 글래드(GLAD)호텔 브랜드의 소유권을 갖고 있고 글래드호텔 운영사인 오라관광 등 계열사 매출이 50%에 달한다. 대림이 2세에서 3세로의 승계에서 보여준 공식을 보면 에이플러스디에 쏠리는 관심도 당연해 보인다.
이해욱 부회장은 7월 중 에이플러스디 지분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림코퍼→대림산업→오라관광→대림코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3월 오라관광이 가진 대림코퍼 지분 4.3%도 처분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림코퍼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기준 대림코퍼의 국내 계열사 매출은 5713억원에 달한다. 총 매출액의 17.8%다. 전년도의 17.2%보다 증가했다. 지난해 9월 시작한 공정위의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하청업체 갑질의혹 등 최근 몇 년새 대림을 둘러싼 악재도 잇따라 불거졌다. 올해 초 이해욱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대표직을 던졌지만 이사 및 부회장으로서의 그의 위상과 역할엔 큰 변화가 없다는 평가다. 지분 승계는 끝났지만 그의 경영능력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총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