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전기차요? 아직은 잘 보이지도 않는 걸요. 몇 년 새 금방 늘어나기도 어려울 거라고 보여요. 하지만 정부가 저렇게 밀고 있으니 달라지겠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기반을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한 상태니까요." -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 소속 한 공무원
한국과 일본은 세계 수소경제 주도권을 먼저 잡기 위해 치열한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무대로 삼았던 것 이상으로,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수소사회에 가까워진 열도를 전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작심하고 있었다.
큰 틀은 비슷하다. 친환경, 안전성 등을 갖춘 자립적이고 저렴한 비용의 사회적 에너지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은 두 나라 공통이다. 현대자동차와 토요타 같은 완성차 대기업이 중심축에서 이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 현실화 정책은 한국 문재인 정부의 그것과 추진 속도나 전략 측면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 부르짖기보다 스며들기
일본이 보이는 가장 큰 차이는 수소경제가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4년 말 토요타가 첫 수소전기차 '미라이' 출시 때 1호 고객이 됐다. 이듬해 1월에는 미라이를 직접 몰고 거리로 나서 시민들을 만나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일찌감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선언은 그 뒤였다. 아베 총리는 2017년 4월 '신재생 에너지 및 수소 관련 장관회의'를 열어 "일본이 세계 최초로 수소사회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 장관들에게 정부가 연내에 수소기본전략을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대대적인 규제 혁파도 주문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수소전기차 보급을 하기 위해 수소충전소 규제를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도록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셀프 수소충전소'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말 2050년을 바라본 장기 계획인 '수소기본전략'을 내놨다. 수소를 에너지원 삼아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3년 대비 5분의 1로 줄이는 게 골자다.
한국은 이 같은 수소관련 정책 지원 본격화가 일본보다 1년여 늦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수소경제활성화 로드맵'을 내놨다. 수소차 누적 생산량과 수소 충전소를 2020년 1만대·130개소, 2022년 6만700대·310개소를 거쳐 2040년에는 290만대·1200개소까지 확보한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대체로 숫자만 나열했을 뿐 제대로 된 세부 현실화 전략은 갖추지는 못한 단계다.
# 공급 확대보다 수요 창출
일본의 수소경제 큰 그림은 절절한 위기감 속에 그려졌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원자력과 해외 화석연료 자원 의존성에 사회적 경각심을 갖게 된 게 배경이다. 효용 측면에서 당장은 불리하지만 공상과학 같은 먼 미래의 밑그림부터 일찍 마련한 것은 생존을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사회로의 진입은 3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요약된다. 가장 먼저 수소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 첫 단계다. 수소전기차를 보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요를 만들어 내야 생산·공급도 활발해질 수 있다는 시장 논리에 철저히 기반을 둔 설정이다.
특히 차나 운송수단에만 집중하지 않는 것이 주목할만 하다. 수소기본전략을 주도하는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소를 이용해 가정에 전력과 난방·급탕 등을 제공하는 가정용연료전지 시스템을 2020년 140만대, 2030년에는 530만대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네팜'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2009년부터 보급을 시작했고 2017년 기준 23만5000여대가 설치돼 있다. 에네팜은 도시가스 등에서 수소를 생성해 이를 반응시켜 전기와 열을 내도록 하는 장치다. 보급 초기 가격은 대당 303만엔이었지만 현재는 100만엔 아래로 떨어졌다. 내구연한이 최소 10년이라는 에너팜이 현재 4인 가족 기준 연 7만~8만엔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곧 보조금 없이도 보급이 활성화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화석연료보다 싼 수소 공급
일본의 수소사회 2단계는 내년 도쿄 올림픽을 치른 뒤 시작된다. 수소 발전을 본격 도입하고 대규모 수소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수요에 걸맞는 효율적 수소 공급 확보가 이 단계의 핵심 목표다. 이를 통해 2030년 수소가격을 지금의 3분의 1 수준인 30엔/N㎥(현재 100엔/N㎥)으로 낮추는 것이다.
차를 기준으로 볼 때 1km 달리는 드는 비용은 현재 수소차가 6.6엔, 가솔린은 8.2엔 정도다. 수소 비용이 가솔린의 5분의 1 정도까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수소전기차 수요가 확보된다. 이렇게 해서 2020년 4000톤 정도인 전국의 수소 사용량을 2030년에는 30만톤으로 급격히 키우는 것이 일본 목표다. 10년 동안 82배나 늘린다는 것이다. 수소경제 확산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분의 1(2013년 대비) 줄이는 것은 덤이다.
일본이 2040년께를 실현 시기로 잡는 수소경제 3단계는 궁극적으로 수소로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는 'CO₂ 프리'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수소로 전기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2050년까지 해외 수소 수입을 확대하고 수소터빈 발전소도 15~30GW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오타 켄이치로 요코하마 국립대학 그린수소연구센터장은 "지구온난화 등의 이슈에 대비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소에너지를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에너지 자원이 없어 수소경제에 적극적인 일본이 국제표준이나 안전기준에 대해서도 고민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