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급 돌풍이다. 기아자동차의 '모하비 더 마스터' 얘기다.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인데도 그렇다. 사전계약으로만 열하루 동안 7000대가 팔렸다. 최상급 플래그십(기함) 차종인데도 말이다.
기아차 한 임원은 임직원 대상으로도 이 차가 풀리는 공식판매 개시일 아침 부리나케 계약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날들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문이 몰리며 임직원 출고가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모하비 더 마스터'가 공식 판매를 시작한 지난 5일 이 차를 살펴보고 또 타봤다. 13호 태풍 '링링'이 오기 전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다. 출시와 동시에 매체를 불러모아 시승 행사를 마련한 기아차 입장에서는 이런 날씨가 낭패였을 테다. 화창한 날 멋지게 달리는 웅장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그림이 안나오게 돼서다.
하지만 거친 악천후 속이어서 모하비 더 마스터는 더 매력을 뿜었다. 바깥 날씨야, 또 노면상태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 차 안에 탄 탑승자들에게 안정감과 안락함, 신뢰감을 줬다. 인천 영종도의 네스트 호텔에서 장흥유원지 인근 경기도 양주 백석읍을 오가는 왕복 168km 구간에서 이 SUV를 체험했다.
출시행사장 주차장에 늘어선 수십 대의 모하비 대오는 꽤 근사했다. 서울모터쇼 때 봤던, 약간 과한 느낌은 확 뺐다. 앞 전체에 세로로 LED 등을 달았던 당시 콘셉트카 '모하비 마스터피스'는 첫인상은 완전변경 신차처럼 강렬했다.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산 모델은 한층 절제된 모습이다.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양쪽 전조등까지 모두 감싸는 두툼한 반광크롬 재질의 선이 강인한 느낌을 줬다. 범퍼 가드(보호대)을 연상시키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세련됐다. 기아차 특유의 '호랑이코' 모양의 앞모습이 눈(전조등)까지 뻗어나간 듯하다. 기아차는 석달 전 내놓은 '셀토스'부터 이렇게 라인을 뽑고 있는데, 향후 내놓을 '스포티지', '쏘렌토' 등 SUV 신차들도 비슷한 느낌을 줄거라는 예상이 많다.
뒷모습도 확 바뀌었다. 앞과 마찬가지로 수직 배열의 후미등이 우뚝하고 당당한 기풍을 뿜었다. 전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손댄 건 전조등과 그릴, 테일램프, 트렁크 등 뿐이란다. 시승차에 같이 탄 베테랑 자동차 기자는 "보닛과 범퍼, 좌우 펜더는 소폭 바뀌었고 사이드 패널과 도어는 아예 똑같다"며 "적은 개발 비용으로 큰 변화 일궈냈다"고 평가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떨림이 없었다. 동승 기자는 "잔진동을 육중한 프레임 바디 무게로 눌러버리는 듯하다"고 했다. 영종도를 출발해 인천공항고속도로에 올라 꽤 굵은 빗줄기 속에 시속 100km 넘게 달려봤는데도 그랬다. 승차감도 거칠고 차내 소음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조용했고, 또 거슬릴 정도의 떨림도 없었다.
차체가 묵직하지만 치고나가는 맛도 꽤 있었다. 이 차에는 6기통(V6) 3.0 S2 디젤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돼 있다. 최고출력 260PS(마력)의 힘을 갖췄고, 바퀴가 노면을 잡아채는 순발력인 최대토크는 57.1 kgf·m나 된다. 2.3톤에 달하는 중량에도 추월 가속력이 일품이었던 이유다.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R-MDPS)으로 바꿨다는 운전대(스티어링 휠) 조향도 날렵했다.
윤성훈 기아차 대형총괄1PM 상무는 "부드러우면서도 답답함 없는 주행성능을 갖춘 차"라며 "전자식 4륜구동, 차동기어 잠금장치, 저단기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도로 위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면의 주행 환경에서 알맞은 차량 구동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장흥유원지를 지나는 산길에서 폭우가 쏟아질 때 주행성능은 진가를 발휘했다. 아스팔트 길 위에 계곡이 생긴 듯 빗물이 흐를 정도여서 서행도 간단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승 기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감하게 코너링을 했다. 그런데도 모하비는 안정적이었다. 미끄러지거나 크게 기우뚱거리지 않고 굽이 큰 오르막 내리막을 거침없이 빠져나왔다.
폭우 속 고속도로에서는 첨단운전보조장치(ADAS)가 염려를 덜어줬다. 양동이로 쏟는 듯한 빗물을 와이퍼 속도가 이겨내지 못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앞차와의 간격이나 차로 중앙을 쉽게 유지하는 게 평소 다른 차를 탈 때보다 쉬웠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과 차로유지보조(LFA) 기능이 악천후에도 잘 작동한 덕이다. 이럴 때는 운전자 눈보다 센서가 나을 수 있겠구나 생각됐다.
오며가며 살핀 인테리어도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으로 기아차 최상급 세단인 'K9' 못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자식 계기판에서 수평으로 이어진 중앙의 12.3인치 대형 클러스터가 시원했고, 목재 느낌을 살린 장식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풀옵션 차이기도 했지만 고급 세단이 갖출 온갖 편의 기능을 다 채우고 있었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인 마스터즈 5인승 4륜구동 차였다. 풀옵션을 포함한 가격은 5292만원. 2~3열에 독립 시트를 두개씩 둔 6인승과 3열을 벤치형 좌석으로 둔 7인승도 있는데 트림 별로 5인승에 비해 각각 93만원, 64만원 비싸다. 여러 시험주행을 했지만 시승 왕복 연비는 10.1km/ℓ로, 이 차 공인 복합연비(9.4 km/ℓ)보다 조금 더 잘나왔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SUV를 통해 현대차와는 또 다른, 기아차스러움을 엿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플래그십 SUV지만 '팰리세이드'가 가족을 나보다 먼저 챙기는 아빠가 택할 차라면, 모하비 더 마스터는 아끼는 조카에게 역동적인 바깥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삼촌의 차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기아차 사람 말처럼 '도심형 SUV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는' 고집 있어보이는 차다.
'차'를 전문가들 만큼은 잘 '알'지 '못'하는 자동차 담당 기자의 용감하고 솔직하고 겸손한 시승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