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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등기이사 내려놓는 이재용, 이유는?

  • 2019.10.16(수) 17:00

임시주총 반대표 우려…득보다 실 '판단'
이사회 빠질 경우 책임경영 논란은 부담
검찰수사속 미전실 출신 인사 역할 주목

"저는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제 자신에게 달려있는 일입니다."-이재용 부회장, 2017년 12월27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과거 재벌 총수들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꺼렸다. 대신 이사회와 이사 및 경영진을 감시하는 감사위원 상당수를 자신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람들로 채웠다.

또 주주총회에서 표결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문제다. 혹여라도 반대표가 많이 나오면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이사회에서 참석해 결정한 사안이나 하급자에게 내린 지시가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법적책임을 묻는 것도 부담이다.

이같은 총수 일가의 행태가 책임경영을 회피하는 행동이라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경영권이란 '권한'만 추구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이재용 부회장은 책임감을 선택했다. 2016년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이 퇴진한 이래 8년 만이다. 갤럭시노트7 발화로 인한 위기상황 극복과 함께 아버지의 와병 속 본인의 리더십을 증명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그런 이 부회장이 다시 이사회에서 빠질 전망이다. 오는 26일 3년 임기가 만료되지만 주주들에게 임시 주주총회 개최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도 임시 주총을 개최하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왜 이 부회장은 막중하면서도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으려 할까.

◇ 리더십 흠집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선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되기 위한 첫 관문은 임시 주총이다. 주총 참석 주주들로부터 선임 안건이 일정 비율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정관에 등기이사 선임 요건을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로 하되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수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의 문턱이 낮지 않다. 논란이 됐던 인사들의 등기이사 안건에 대해 주주들의 반대가 매서웠던 점을 감안해서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선임 안건에서 이같은 흐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이상훈 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기이사 선임 안건은 회사 역대 가장 낮은 찬성률(61.6%)을 기록했다. 다른 안건이 90%대의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것과 대조된다. 단일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감독의무 소홀'을 이유로 반대표를 날리면서 반대표가 급증했다.

이 전 사장 재직 시절 삼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승마지원 등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집안 내부단속'을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올해 주총에서도 특정 인물에 대한 반대표는 두드러졌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재선임 안건에 해외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플로리다연금, 캐나다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 네 곳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도 반대 의견을 냈다. 박 전 장관이 삼성전자 공익법인으로 분류되는 성균관대에 교수로 재직하기에 감사위원으로 재직할 그의 독립성을 우려한 것이다.

단일 최대주주로 지분률이 10%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이 찬성했음에도 찬성률이 71.4%로 저조했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반대표가 무더기로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국민연금이 박 전 장관 선임에 반대했으면 어땠을까. 안건 찬성률은 58.2%로 대폭 낮아져 통과요건인 과반을 간신히 턱걸이 한다.
 
박 전 장관 사례를 이 부회장에도 비춰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수탁자 책임원칙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을 비롯해 기관투자자들의 눈길이 올해 들어 매서워졌다. 앞서 국민연금은 올해 배임 혐의를 받았던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배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기이사 선임 안건에도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에게 뇌물 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을 기관투자자들이 곱게 받아들일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설령 선임 안건이 통과된다 해도 반대표가 높게 나올 경우 리더십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등기이사에서 내려온다면 책임경영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2016년 국민연금이 이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책임경영 의사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의결권 자문기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에 대한 논란으로 반대의사를 권고한 것과 반대되는 행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법원판단 관련 불확실성이 있는 상태에서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이 부회장 등기이사직 재선임은 반대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한 거 같다"고 말했다.

◇ 법원판결 '근심'

법원의 판결도 부담이다.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심 판결에서 무죄로 인정했던 정유라씨에 제공하기 위한 말 세마리 구입액,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추가 뇌물로 봤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에서 이를 포함할 경우 이 부회장의 뇌물·횡령액수는 2심에서 인정한 36억에서 86억으로 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을 경우 징역 5년 이상 혹은 무기징역을 선고토록 해 실형 압박이 커진다. 이 부회장이 2심과 달리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도 금액이 72억원으로 50억 상한선을 넘어서다.

특가법은 여기에 더해 배임이나 횡령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금융회사, 공공기관, 유관 기업체 취업을 금지한다. 기업체 범위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만일의 경우 이 부회장이 대법원 논리를 적용받아 파기환송심 등 앞으로 남은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등기이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회사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 남은 것은 '삼바'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공장 외관/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직과 상관없이 경영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등기이사가 아니지만 부회장이란 명함을 유지하면서다. 삼성전자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강조한다. 삼성이 뿌리인 CJ그룹, 신세계그룹의 이재현 회장, 정용진 부회장도 2010년대 초 등기이사에서 내려왔음에도 경영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 일환으로 이 부회장은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서울 서초구 서울R&D캠퍼스 방문을 시작으로 중동, 인도, 일본 등 국내외를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 10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사업장에서 열린 13조1000억원 규모 퀀텀닷 디스플레이 투자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덕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다만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는 것과 별개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총수 부재란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도 복병이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산정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를 조작해 제일모직 가치를 뻥튀기 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제일모직 최대 주주(지분율 23.2%)인 이 부회장의 지분이 통합 삼성물산에서 고평가 받도록 해 승계작업의 발판을 다졌을 것이란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일부 피의사실까지 흘리며 여론을 결집하며 수사에 총력을 기울인 바 있다. 삼성 측은 "승계작업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대법원이 국정농단 재판에서 검찰 논리가 일부 인정됐다.

전방위 압박 속 삼성측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재무에 밝은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 출신 구원투수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가 이 부회장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작은 미전실이라 불리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 수장인 정현호 사장 등 과거 미전실 출신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와해 의혹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음에도 여전히 총수의 '복심'은 미전실이란 믿음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거취는 삼성이란 개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래 아홉 번이나 이 부회장을 만난 것도 삼성 총수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등기이사를 내려놓은 이 부회장과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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