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금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값비싼 자동차를 일시불로 현금 결제하는 것보다 할부나 리스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코로나19 여파로 전세계 자동차산업의 생산·판매 생태계가 무너진 가운데 자동차 금융에도 피해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올 1분기 현대차의 금융부문 영업이익은 218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8.2% 감소했다. 이 기간 자동차부문 영업이익(4640억원)은 8.5% 감소했다. 금융부문이 판매보다 코로나19 피해를 2배 넘게 받은 셈이다.
특히 현대차 미국 금융법인(Hyundai Capital America, 이하 HCA)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3일 열린 현대차 기업설명회(IR)에서 이형석 현대캐피탈 상무(재무관리실장)는 "올 1분기 HCA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55% 감소했다"고 전했다.
HCA 이익이 반토막 난 이유는 대규모 대손충당금 탓이다. 이 상무는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경기 전망 하락 가능성을 반영해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했다"고 전했다. 삼성증권은 대손충당금 규모를 1200억원으로 제시한 뒤 "연체율 증가와 중고차가치 하락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HCA가 코로나19 탓에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한번에 쌓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리스 기반의 미국 자동차 시장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은 자동차를 살 때 보통 3년 단위로 장기 임대하는 리스 방식을 선호한다. 월 리스료는 현재 차 가격에서 3년 후의 잔존가치를 뺀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우선 3년만 빌려서 타보겠다는 얘기다.
3년 뒤 소비자는 잔존가치와 중고차 가격을 비교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잔존가치가 중고차가격보다 낮으면 리스 계약을 연장하지만 그 반대 경우는 리스 차량을 반납한다. 리스보다 중고차를 사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반납되는 리스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이 경우 HCA 등과 같은 자동차 금융법인은 잔존가치보다 헐값에 차를 팔아야하는 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이 현대차가 미국에서 중고차 가격을 관리하는 이유다.
작년 HCA의 매출을 부문별로 나눠보면 중고차매각 등 기타(47억달러), 오토리스금융(36억달러), 자동차할부금융(8억달러), 딜러금융(1억달러) 등이다. 증권업계에선 기타부문 중 중고차매각 매출 비중이 40억달러 가량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고차매각 매출이 리스금융보다 더많은 것이다.
위기땐 자동차 금융이 자동차 판매보다 더 위험하다.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동차 판매부문보다 금융부문이 먼저 적자 전환했다.
현대차의 HCA도 마찬가지다. 신영증권은 올해 현대차의 금융부분 영업이익이 7540억원으로 작년보다 15% 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 감소치(11.8%)보다 더 큰 타격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4월들어 미국 중고차 가격은 15% 가량 하락했다"며 "HCA는 중고차 가격이 10% 떨어지면 손실이 4000억원 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현대차는 HCA의 코로나19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3가지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동성 확보, 자산건전성 관리, 중고차 가격에 따른 손실 최소화 등이다.
HCA는 우선 지난 2월과 4월 총 4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는 올해 발행 계획의 70% 수준이다. 최근에는 10억달러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도 성공했다. 이 유동성을 기반으로 미국 자동차 판매 지원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자산건전성은 지난 몇 년간 심사기준을 강화해 연체율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단기간에 코로나19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중고차 가격은 리스계약 만기 조정을 통해 중고차 공급대수를 최적화하고 온라인 경매를 활용하는 방안 등으로 단기 가격 하락 충격을 방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형석 상무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중심의 믹스 개선, 신차 출시 등으로 수년간 현대·기아차의 미국 중고차 가격을 향상해왔고, 올 1분기에도 트렌드가 지속됐다"며 "코로나19로 불확실한 시장속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중고차값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과거보다 리스 판매 비중을 줄이고 있는 추세"라며 "중고차 가치 하락이 문제가 되는 만큼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