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가성비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당당한 브랜드로 제값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6일 열린 기아차 기업설명회(IR)에서 주우정 재경본부장이 한 말이다. 그간 기아차는 '가격 대비 좋은 성능'의 차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가성비 딱지를 떼어내고 성능에 걸맞은 가격을 받겠다는 얘기다.
기아차의 브랜드력은 영업이익이 증명한다.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195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3% 줄었지만 세타 엔진 리콜 비용 1조131억원을 빼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콜 비용 제외한 영업이익은 1조208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3분기 리콜 비용을 뺀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100.9% 늘었다. 리콜 비용을 뺀 영업이익률은 7.4%에 이른다.
이날 IR에 참석한 애널리스트는 "실적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시장 기대치를 아주 많이 상회했다" 등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시장의 관점에선 리콜 비용보다 개선된 이익률이 눈에 띄었던 셈이다. 기아차 주가는 지난 26일 3.68% 오른데 이어 27일에도 9%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 3분기 실적이 깜짝 실적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적인 변화라고 강조했다. 신차 가격이 인상되고, 수익성 높은 차종이 많아지는 제품 믹스(Product Mix)를 구성하면서 이익이 개선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옵션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느는 반면 판촉비(인센티브)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평균판매단가(ASP)다. 기아차의 내수 ASP는 2017년 2370만원, 2018년 2450만원, 2019년 2490만원, 올 3분기 2770만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수출 ASP도 2017년 1만5400달러에서 올 3분기 1만8400달러로 늘었다.
주우정 본부장은 "작년부터 강조한 신차 효과에 의한 '골든 사이클'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신차 가격 인상, 믹스개선, 인센티브 하락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라고 강조했다.
관건은 지속가능성이다. 이날 '분기당 영업이익 1조원을 할 수 있는 기초체력으로 레벨업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주 본부장은 "단기적인 현상이 절대 아니다"며 "경상적인(변동없이 항상 계속되는 것) 수준으로 어느 정도 틀을 갖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아차가 안정적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내게 되면, 그룹내에서 현대차와 동급인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현대차도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아차가 안정적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면 내실은 더 좋다. 현대차가 작년 4분기 영업이익 1조2436억원을 달성할 당시 영업이익률은 4.5% 수준이었다. 반면 기아차가 이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면 7%대 영업이익률을 내게 된다.
◇ 현대차도 선방…고민은 중국
이날 실적을 발표한 현대차의 실적도 뜯어보면 '겉은 어닝 쇼크지만 속은 어닝 서프라이즈'다.
현대차의 지난 3분기 영업손실은 3138억원으로 적자전환됐다. 현대차가 분기 손실을 낸 것은 2010년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한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때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적자를 낸 상황에서도 이익을 냈던 현대차가 리콜 비용에 무너진 것이다.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나온 셈이다.
하지만 리콜 비용 2조1352억원을 제외하면 영업이익은 1조8210억원에 이른다. 2014년 4분기 영업이익 1조8760억원 이후 최대치다. 현대차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는 이유도 '믹스개선'이다. 현대차는 작년 3분기와 비교하면 7780억원의 믹스 개선 효과를 봤다.
국내에선 수익성이 높은 차종인 그랜저와 팰리세이드의 지난 3분기 판매량이 전년동기대비 각각 120%, 90% 증가했다. 특히 제네시스 G80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214% 급증하며, 현대차에서 제네시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14.3%까지 높아졌다. 미국에서도 팰리세이드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85% 늘며, 수익성이 좋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판매 비중이 64%까지 늘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질병이 된 중국이다. 지난 3분기 현대차의 중국 도매판매는 11만8000대로 전년동기대비 31% 감소했다. 중국 도매 판매량은 2016년 114만2000대, 2017년 78만5000대, 2018년 79만대, 2019년 65만대 등으로 매년 감소 추세다. 이경태 현대차 중국지원팀장은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판매 감소로 인한 딜러 재고가 증가해 딜러의 자금 부담이 가중됐고 우수 인력의 이탈로 딜러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신차를 출시하고 중국 딜러를 다시 살려 시장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팀장은 "수익성 안 좋은 차는 단종하고 엘란트라, 투싼 등 신차 위주로 판매믹스를 개선하겠다"며 "아울러 기존의 도매 중심에서 소매 중심으로 판매 방식을 바꿔 딜러의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겠다. 정상적인 시장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