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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기후정상회의 '한 목소리' 냈다고요?

  • 2021.04.29(목) 06:00

미국 주도 기후정상회의서 중·러 엇박자
한국도 NDC 목표 제시 못해…중도적 입장
개도국 "선진국 재정지원 먼저 해달라"

냉정하게 봅시다. 기후위기를 앞두고 세계는 아직 분열돼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속도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엑셀을 밟기 주저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과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만큼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려나요? 사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번 기후정상회의(Leaders Summit on Climate)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 막 내린 기후정상회의…40개국 한목소리 냈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가 지난 23일 막을 내렸습니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게 회의의 목표였습니다. 40개국 정상이 참여했죠.  

문재인 대통령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번 기후정상회의는 중요한 이벤트입니다. 한국은 오는 5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습니다. P4G는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국제기구, 기업들이 참여하는 연대입니다. 

두 회의의 아젠다는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번 기후정상회의는 올 한 해 동안 기후변화를 두고 펼쳐질 국제적인 대화의 전초전입니다.

회의가 끝난 뒤 각 언론에서는 호평을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각국 정상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게 보도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한목소리'가 아닙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두고 각국이 이해관계를 따져보지 않을 리가 없죠. 

# 미국과 우방국들, 구체적인 NDC 추가감축 목표 제시

입장 차이가 크게 드러난 것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입니다. NDC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이 가진 의무인데요. 당사국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미국과 우방국들은 기존보다 상향된 NDC를 이번 회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먼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50%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기존 목표는 최대 28% 감축입니다. 목표 수치를 거의 두 배 높였습니다. 

폰데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EU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전까지는 40% 감축이 목표였습니다. 

영국도 기준을 높였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78% 줄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존 목표는 68%였습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2013년 대비 46% 감축을 새로운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기존에는 26% 감축이 목표였습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40~45%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존에는 30% 감축이 목표였습니다.

각각 기준연도가 달라 감축 목표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기존 목표보다 훨씬 상향한 수치를 내놓았습니다.

# 러시아·중국·인도 등 "할만큼 했다. 약속한 지원부터 해달라"

반면 NDC 상향 움직임에 동참하기보다는 다른 목소리를 낸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과 긴장 관계를 보이는 나라들입니다.

우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은 간단했습니다. 그는 "러시아는 다른 많은 나라에 비해 지난 1990년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더 많이 감축했다"고 합니다. NDC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사실 푸틴 대통령은 회의 참석 여부부터 큰 관심사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죠.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살인자'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게 다행이네요.

다음은 중국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세계 환경 문제 해결은 공동의 책임이지만, 책임은 차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NDC에 대한 새로운 목표제시는 없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말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은 기후변화 대응에 모든 국가가 책임이 있지만, 미리 경제 성장을 한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도출된 원칙을 재확인 한 것입니다. 

중국의 발언에 힘을 더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미국이 저소득국의 석탄발전 대안을 위해 약속한 수십억 달러의 자금 집행을 촉구했습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부유한 나라가 더 많은 원조를 약속할 때만 온실가스 배출 목표 강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불법적 삼림 벌채 종식을 위해 선진국의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두 NDC 목표 상향없이 나온 발언들입니다.

사실 나라 간의 입장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화석연료를 써가며 고도성장을 이미 이뤘습니다. 인건비가 자연스럽게 오르면서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은 중국과 동남아 등 개도국으로 아웃소싱(제3자 위탁)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진국의 탄소중립이 개도국의 탄소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니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하자는 미국의 제안에 화답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문제를 지적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와 브라질 등은 선진국의 아웃소싱이 국가의 주요 산업입니다.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습니다.

# 한국도 NDC 목표상향 못해…기후대응도 패권주의 점철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요. 미국은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국입니다. 이에 대한 화답을 했을까요.

의외로 아닙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NDC를 연내에 상향할 것이라고 말하긴 했습니다. 단 구체적인 NDC 상향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죠. 추가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도 했지만 국제적인 울림이 있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기후정상회의는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패권주의 극복이 과제라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의 필요성 자체에는 모든 참가국이 공감했지만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도 탄소중립은 모두의 공감대를 얻었습니다.

전진하자는 말보다는 한걸음이 더 필요한 시기임에는 분명합니다. 국제적인 패권경쟁으로 탄소중립이라는 중요한 문제 해결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5월 P4G 서울 정상회의와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진전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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