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주식 등 유산 상속이 마무리되고,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삼성전자가 과감한 대규모 투자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화두중 하나인 미국내 투자 확대를 놓고 경쟁업체들의 계획이 속속 공식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달말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미국내 반도체 투자 결정이나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 계획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수감상태인 이 부회장이 가족간 합의로 결정하는 유산 상속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 이재용 시대, 투자 카드 꺼낼까
이재용 부회장은 고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생명 지분을 물려받아 기존 0.06%였던 지분율이 10.44%로 높아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삼성물산 지분도 17.48%를 보유해 최대주주였다. 이번 상속으로 18.13%가 되면서 그룹 지배력은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다.
일부 재벌가에서 종종 벌어지는 유산 다툼 없이 지배력 승계가 이뤄지면서 '이재용 체제'의 본격화와 함께 초대형 투자도 재개할 수 있을지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20조원 규모의 미국내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의 방향이 대표적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기존 계획이기도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백악관이 삼성의 미국내 투자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사안이 더욱 무겁다.
현재 삼성전자는 기존 반도체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시,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뉴욕주 등을 놓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고 급하게 추진될 수도 없는 일"이라며 "20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인 만큼 조건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되, 특정한 시점까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 조건이 유리하지 않을 경우 국내 투자 등에 집중하는 대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 2분기부터 평택 2라인을 본격 가동해 첨단공정을 증설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대형 M&A, 가능할까?
이와 함께 이재용 체제의 본격화 전후로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를 인수할 수 있다는 추측도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NXP의 작년 기준 연간 매출은 86억1200만달러(약 9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22억2800만달러(약 2조5000억원) 수준이다. 전년대비 각각 3%, 13% 감소했지만 과거 퀄컴이 인수를 시도했던 이력, 시가총액 등을 토대로 50조원에서 60조원 이상의 금액이 거론된다.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있다. 이 부회장은 2019년부터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부문에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한 바 있다. 올해초 작년실적 발표 당시에 3년내 유의미한 M&A를 추진하겠다는 경영진 설명도, 최근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도 삼성전자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투자 여력이 있는 것과 투자 결정과는 현실적인 거리가 있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설명이다. 이 부회장이 수감중인 동안 기존 계획과 다른 변수에 즉각 대응하거나 새로운 대형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미국내 투자결정이든 대형 M&A이든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일단은 가까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삼성이 미국내 투자를 결정하기는 이른 시점이고,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에 투자 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물론 정치적 상황이란 변수도 주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