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는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비수기다. 연말에 블랙 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연휴 등 디지털 기기의 소비가 몰려있다보니, 1분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대표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성적표는 엇갈렸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두 업체 모두 '상저하고'의 흐름은 같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 비수기 영향을 그대로 실적에 노출한 반면, LG디스플레이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급증한 IT(전자기기) 제품 수요의 덕을 톡톡히 봤다.
◇ 이어지는 비대면 효과 속 'OLED의 힘'
LG디스플레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6조8828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7.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230억원으로 23.6% 줄었다. 그러나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매출은 45.7%, 영업이익은 244.5% 급증하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3개 분기 연속 흑자인데, 영업이익은 2019년 1분기 이후 2년만에 삼성디스플레이(3600억원)를 앞섰다.
1분기에는 모바일 제품의 출하량이 줄어들면서 애플 아이폰12 흥행 효과를 봤던 전 분기와 비교해 실적이 다소 줄었지만, 예상보다는 양호한 성적표다. 특히 이번 실적은 1분기가 디스플레이 업계의 통상적인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문화가 정착하면서 IT제품의 수요가 늘어나자 LG디스플레이 실적에서는 계절적 요인이 희미해졌다. 계절과 상관없이 노트북, 태블릿 등 IT기기가 수요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비수기의 개념이 사라진 셈이다.
LG디스플레이 측은 "1분기는 통상적인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홈이코노미 트렌드 영향으로 TV와 IT 제품 등 대형 패널의 수요 호조가 지속됐다"며 "수요 호조와 더불어 산업 내 부품 수급 이슈 영향 등으로 LCD(액정표시장치) 패널가격의 상승세가 예상보다 확대돼 견실한 성과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부문은 비수기인 1분기에도 성수기(4분기) 수준의 출하량을 기록하며 판매 호조를 이어갔다. 소비자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프리미엄 TV에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성과가 확대된 덕이다. 현재 글로벌 TV용 대형 OLED 패널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99%로 거의 독점 형태다.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1분기 OLED TV 패널 출하량은 160만대로 이는 성수기인 4분기와 동일한 수치"라며 "LCD TV 세트 가격 상승으로 OLED TV의 매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OLED TV 패널 출하량은 780만대로 성장해 당초 예상치를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모바일 비수기 영향은 그대로
삼성디스플레이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LG디스플레이가 대형 패널 사업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패널 사업 위주다. 심지어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디스플레이 부문은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 확대로 TV와 모니터 패널 수요가 늘어나 적자가 줄긴 했지만, IT제품 수요 증가가 매출에 가져오는 영향은 LG디스플레이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디스플레이(DP)부문은 올 1분기 연결기준 매출 6조9200억원, 영업이익 36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매출은 30.5%, 영업이익은 79.4% 감소한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의 5분의 1로 쪼그라든 셈이다. 해를 넘긴 뒤 분기 영업이익이 1조4000억원가량 날아갔다. 영업이익률은 5.2%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애플 스마트폰 판매 호조의 영향을 크게 봤던 터라 차이가 더 컸다. 작년 4분기 삼성디스플레이는 매출 9조9600억원, 영업이익 1조7500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주요 고객인 애플의 아이폰12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실적이 급증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1분기 실적 부진에 대해 "중소형 패널은 스마트폰 고객사들의 부품 수급 문제와 계절적 비수기 영향에 따라 스마트폰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주요 고객사의 부품 수급 차질까지 겹쳤다. 지난 3월 삼성전자 제52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고동진 삼성전자 IM(IT모바일) 부문 사장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에 대해 "반도체 등 부품 수급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며 "2분기가 문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루카 마에스트리 애플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전 세계적인 반도체칩 부족 사태가 2분기 매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며 매출액이 30~40억달러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기에 차세대 TV 시장, 즉 OLED 시장에 대응하려 라인 개조를 하다보니 투자 비용이 늘고, 이와 맞물려 LCD 생산능력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기 위해 연내 LCD 생산을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전체 시설 투자 규모인 9조7000억원의 7.2%인 7000억원을 디스플레이 부문에 투자했다.
다만 지난해 1분기와 올해 1분기 실적을 비교하면 매출은 5.0%, 영업이익은 224.1% 증가했다. 실적 상승을 이끈 것은 중소형 패널이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보급형 스마트폰에 OLED를 탑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익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이 삼성디스플레이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보급형 스마트폰 라인업인 갤럭시A 시리즈에도 OLED 패널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업체별 사업 특성이 커지다보니 1분기가 비수기라는 계절적 영향력이 약해졌다"며 "비수기 개념은 개별 업체별 특성을 배제한 업계 전반의 트렌드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