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으로 커 버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대 인터넷사업자의 다툼. 망 사용료를 놓고 최초로 법정에 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2심 공방이 시작됐다. 전세계 이목이 쏠리며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만큼 재판과정과 주요쟁점, 글로벌 판도에 따른 논점 등을 조명해본다. [편집자]
글로벌 통신·콘텐츠 사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소송전' 2막이 올랐다. 1차전은 SK브로드밴드의 승리였고, 넷플릭스가 항소하면서 2차전이 시작된 것.
재판부는 사회적 주목도를 의식해 이번 사건을 공개 재판으로 전환, 법정에서 양측의 치열한 신경전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2심 판결이 나오기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준 1심 재판부보다 2심 재판부가 더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증거들을 양측에 요구하고 있어, 이를 얼마나 충실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초호화 대리인 김앤장 vs 세종 '신경전'
서울고등법원 민사19-1부(부장판사 정승규·김동완·배용준)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넷플릭스(법률대리인 법무법인 김앤장)가 SK브로드밴드(법무법인 세종)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망 사용료 소송'으로 불린다. 앞서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측이 '트래픽이 과도하게 발생해 망에 부담이 되니 사용료를 달라'며 협상을 제기한 데 대해 '우리는 낼 의무가 없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작년 6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으나, 넷플릭스가 항소심을 제기하면서 2심 절차가 시작됐다.
이날은 양측 법률대리인이 본격적인 변론에 돌입한 날이다. 오후 5시 서관 304호 조정실에서 약 50여명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변론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소요 시간도 예상된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지난 1차 변론이 단 14분 만에 비공개로 치뤄진 것과는 차이가 컸다.
재판부가 재판 절차를 공개로 전환한 이유는 이 소송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 전후, 망 사용료를 주장하는 유럽 통신사 진영과 해외 연구자들은 SK브로드밴드의 승소를 거론하며 '넷플릭스 등 콘텐츠제공사(CP)는 망 투자금을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론 청취에 앞서 재판부 역시 "(이 사안은) 기술적인 부분을 담고 있고 선례가 없는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이는 양측이 입장을 달리하는 '트래픽의 망 부담 유무', '망 사용 대가 정산법' 등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복잡한 수준의 사건 특성, CP와 ISP(인터넷기간사업자)가 망 사용료를 두고 다툰 전례가 없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양측은 변론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이날은 '구술 변론 원칙'으로 사전에 예고됐으나, 넷플릭스 측이 '변론을 이해하기 좋게 목차라도 실물화상기에 띄우겠다'고 하자, SK브로드밴드 측은 아예 자료 이미지를 띄우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에 넷플릭스가 '우리는 준비를 안 해왔으니 차라리 둘 다 아무 것도 띄우지 말자'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상의 끝에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마무리했다. 사진 자료를 준비한 SK브로드밴드가 더 효율적 변론을 진행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변론 중 거친 표현이 오가기도 했다. 각각 20분의 변론 시간이 주어졌는데 넷플릭스 측은 "피고(SK브로드밴드)는 착신독점력을 남용해 통행세를 요구한다"며 "어느 교수님은 피고의 행태를 두고 '삥 뜯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공격했다.
SK브로드밴드도 뒤지지 않았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넷플릭스 측과 달리 자리에 선 채로 화면에 띄운 각종 자료 이미지를 손으로 지적하며 격렬하게 재판부를 설득했다. 그는 "원고(넷플릭스)는 마치 SK브로드밴드를 택배업체에 비유한다"며 "'물건만 날라주면 될 걸 왜 우리에게 돈 달라 그러냐'고 하는데 그런 비유는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관계 궁금한 재판부, 관심사안은?
2심 재판부 구성원은 변화가 없다. 앞서 진행된 1차 변론 시 업계에선 대선 이후 재판부 인사가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단 점을 우려한 바 있다. 이 재판부에 대해 법무법인 세종은 '상당히 보수적 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1·2차 변론 모두 법률대리인의 프레젠테이션보다 제한된 시간 내 구술 변론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와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다르단 평가다. 재판부의 평가대로 이 사건의 쟁점 대부분은 기술적인 요소가 차지, CP와 ISP간 구조에 대해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이상 주장·근거의 진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40여분간 양측의 변론을 청취한 2심 재판부는 사안에 대해 촘촘하고 다채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여러 ISP·CP와 맺고 있는 계약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가 국내 CP(네이버, 카카오 등)로부터 망 사용료를 징수하는 법률적 근거, CP 규모에 따른 세부 징수 기준 △넷플릭스가 과거 망 사용료를 지급한 버라이즌·컴캐스트와의 현재 시점 계약 관계 △양측이 망 이용·이용 대가에 대해 초기 합의한 내용이 있다면 명시적 증거(이메일 등) 등을 질의했다.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야만 답변할 수 있는 내용도 상당했다. 재판부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의 망을 이용하는 것을 물리적·기계적인 측면에서 설명 △송신 ISP와 착신 ISP간 연결의 다층적 구조를 자세히 설명 △트랜짓 비용의 징수 근거가 연결성 확장에 따른 비용인지 보전 비용인지 설명 △송신 ISP와 착신 ISP의 망 투자 분담 구조 설명 등을 요구했다.
양측은 오는 5월까지 질문에 대한 답변 및 상대 측 주장에 대한 반론을 서면으로 제출한다. 넷플릭스 측이 '준비할 일이 제법 되니 기일을 넉넉히 주라'고 양해를 구했으나, 재판부는 2개월가량의 기간만 허락했다. 3차 변론일은 오는 5월18일 4시30분이다.
이날 변론 후 SK브로드밴드 측 강신섭 변호사는 "(판사) 세 분이 기록을 상당히 열심히 보고 CP와 ISP 관계에 처음 접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합리적인 의문을 많이 제기했다"며 2심 초반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재판부가 여러 사안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단계이고, 어떤 예단을 갖고 있지 않아 보인다"면서 "1심이 너무 쉽게 끝났기 때문에 재판을 처음 진행하는 것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