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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지리가 길리된 사연 '알쏭달쏭 車현지화'

  • 2022.06.20(월) 17:46

르노코리아, 어감 고려해 2대주주 사명 표기법 변경
CEO 교체로 현지화 '노력'도

"지리하면 우선 복 지리가 떠오르고요. 지리부도도 있고…여러 이유가 있죠. 이제 길리로 불러주세요."

최근 만난 르노코리아자동차 임원이 자사 2대 주주(지분 34%)로 떠오른 중국 자동차 회사 '길리'(Geely)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동안 국내 언론은 길리를 지리라고 썼습니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해 3월 SK㈜가 길리와 손잡고 뉴모빌리티 펀드를 설립한다고 발표할 때 표기도 '지리자동차그룹'이었습니다. 이제 지리가 아니라 길리라니, 무슨 사연일까요.

길리자동차그룹 /사진=길리 제공

지리와 길리 사이

길리는 스웨덴 볼보, 전기차 스타트업 폴스타, 영국 고성능 차량 로터스 등을 보유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입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 지분도 9.69% 보유한 2대 주주이기도 하죠.

그런데 영어권 사람들 일부가 삼성을 샘숭, 현대를 횬다이 정도로 발음하는 수준이 아니라 회사명 표기 방식이 각국마다 다르면 곤란하겠죠. 

르노코리아는 지난 10일 개최한 기자 간담회 시작 직전에도 기자들에게 '지리'를 '길리'로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자세한 배경 설명은 없었죠. 국내 사업자 가운데 길리와 가장 가까운 회사인 르노코리아가 그렇게 쓰기로 결정했으니 해당 표기를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는 회사 이름을 어떻게 발음했을까요. 

제 귀엔 분명히 '지리'로 들렸습니다. 물론 제 귀가 틀릴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자들 10여명을 상대로 물어봤습니다. 다들 '지리'로 들었다고 합니다. 길리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도 몇건 봤습니다. 영상 속 발음은 지리도, 길리도 아니었습니다. '질리'로 들립니다. 

이에 대해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길리'와 '지리' 사이의 중간 발음"이라고 설명합니다. 하긴 외국어를 완벽하게 한국어로 옮겨 적기는 힘들 것입니다. 

길리는 한자로 '吉利'니까 우리말로 읽으면 길리겠죠. 그러나 외래어는 원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는데요. 상하이-상해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길리는 중국어 사전에서 '질리'라고 발음하도록 규정하는 걸 보니, 길리도 지리도 아닌 질리가 맞을듯도 합니다.

길리로 불러달라던 간담회가 열린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르노코리아 임원은 더욱 솔직한 설명을 털어놓습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어에선 '지리'보다 '길리' 어감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리'에는 다른 뜻, 특히 자동차 기업과는 딱히 연관성이 없는 한국어 의미들이 많죠. 

앞서 언급한 '복 지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리(ちり)는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 중 하나인데요. '맑은탕'으로 바꿔 써야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싼다는 뜻의 '지리다'도 있고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루하다의 '지루'는 '지리'(支離)의 모음 발음이 변해 굳어진 것이라고 하니, 지리에는 지루하다는 어감도 있죠. 세계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 칠레의 음역어가 '지리'(智利)고요.

즉 자동차 회사 이미지와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어감보다 '길'하다 정도의 뜻이 나타나도록 사명 표기를 바꾸려는 의도가 파악됐습니다. 터키가 자국을 튀르키예라고 불러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한 사례와 유사한 경우랄까요. 영어로 터키는 칠면조, 멍청이 등의 뜻을 담고 있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르노'도 '흐노'라고 말하는 게 맞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아무래도 흐노보다는 르노가 어감도 그렇고 발음하기도 좋겠죠.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현지화 위한 '노력'…새로운 CEO로도 돌파구

이처럼 르노코리아가 2대 주주 사명 표기에 예민한 모습을 보인 것은 최근 변화 및 사업성과와 연관있어 보입니다. 르노코리아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부진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3.6%에 머물렀죠.

지난 3월 회사명도 기존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삼성을 떼고 르노코리아로 바꾼 까닭에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구축도 필요합니다. 

드블레즈 신임 대표의 등판도 부진한 사업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담겼습니다. 공학도인 드블레즈 대표는 르노그룹뿐 아니라 중국·남미 시장에서 신차 기획·개발 경력을 쌓은 인물입니다.

국내 차 판매 사업의 부활뿐 아니라 국내 생산공장을 기반으로 수출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회사 전략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수입차이면서 국산차인 곳은 이미지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명 표기와 생산 역량 강화에 대한 고민은 넓게 보면 현지화 전략이기도 하지요.

다른 브랜드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발견됩니다. GM(제너럴모터스)도 자사 브랜드 중 하나를 '쉐보레'라고 하는데요. 이를 외래어 표기법대로 하면 '셰브럴레이'로 써야 했죠.

이 회사는 올 3월 로베르토 렘펠 당시 GMTCK 사장을 한국GM 사장 겸 CEO로 선임했는데요. 렘펠 사장은 1982년 GM 브라질에 입사한 뒤 GM의 글로벌 사업장에서 제품 기획과 차량 개발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의 경력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내 판매는 물론이고 생산에서도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회사 측은 "렘펠 사장은 내수 및 수출 시장에서의 성장, 차세대 글로벌 신제품의 출시, 한국 시장 내 브랜드 성장, 한국사업장의 지속적인 경쟁력 향상 등 한국사업장의 분명한 목표들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폭스바겐그룹코리아도 독일어 발음에 맞춰 '폴크스바겐'이라고 써야 한다는 논쟁이 있는데요. 회사는 국내 시장에서 사명 표기를 폭스바겐으로 하고 있죠. 이 회사도 오는 7월부터 아우디 부문 신임 사장을 교체합니다.

중국 FAW-아우디 합작 법인(FAW Audi Sales Company)에서 딜러 네트워크 관리 업무를 수행한 임현기 총괄이 주인공입니다. 임 사장은 아우디가 2004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브랜드를 이끄는 최초의 한국인이자 첫번째 여성이라는데요.

이번 인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벤츠와 BMW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인 사장은 현지화 노력이기도 하죠.

폭스바겐그룹도 "이번 인사는 본사가 추진하는 전략에 발맞춰 프리미엄 시장 내 아우디 브랜드의 전동화 포석 및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습니다.

회사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쓰는지에 대한 고민과 CEO 교체가 사업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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