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은 LG전자 가전 사업의 심장부다. 1976년 대지면적 7만8000평 규모의 1공장을 지었고 1987년에는 이보다 약 1.6배 큰 2공장을 준공했다. 1공장과 2공장 규모를 합하면 축구장 약 95개 규모다. 이들은 글로벌 17개 생산기지 중 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이 되는, 즉 '마더 팩토리' 역할을 하고 있다.
LG전자는 46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노후화 된 1공장을 지난 2018년 자동화·정보화·지능화를 적용한 스마트팩토리로 탈바꿈시켰다. '공장'이라는 명칭 대신 '스마트파크'라는 이름도 새롭게 얻었다. 그 결과 세계경제포럼의 '등대공장(첨단 기술로 제조업 역량을 끌어올린 생산기지)'에 선정됐다. LG전자의 제조 경쟁력을 상징하는 창원 LG스마트파크를 찾았다.
사람 대신 열일하는 로봇
지난 6일 오전, 김해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약 40분을 달리니 길게 뻗은 직선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국내 대표 계획도시인 창원시를 동·서쪽으로 나누는 '창원대로'였다. 창원대로 동쪽에는 주거·상업지역이 밀집해있고, 서쪽은 공단지구였다. LG전자 가전 사업의 핵심 생산·연구시설이 밀집한 LG스마트파크는 이 공단지구의 중심부에 자리해 있었다.
LG스마트파크1(1공장)은 지난해 선진화 공장 1차 준공을 완료하고 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현재 스마트파크1 통합생산동에는 △LG 시그니처 냉장고 △오브제컬렉션, 북미향 프렌치도어 등 냉장고 △정수기 등 3개 라인이 돌아가고 있다. 이날은 LG전자의 협조를 얻어 3층 냉장고 조립 라인을 둘러봤다.
통합생산동 내부는 시원하고 깨끗했다. 쾌적한 온도는 이날의 날씨 덕분은 아니었다. 통합관제시스템을 통해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도 이와 비슷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LG전자 측 설명이다.
공장 내 바닥에는 초록색, 노란색 선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초록색 선 사이사이에는 QR코드가 그려져 있다. 물류로봇(AGV)은 QR코드에 입력된 주소대로 초록색 선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노란색 선을 벗어나 길을 막으면 AGV는 멈춰서 "길을 비키라"며 음악 알림을 흘려보냈다.
통합생산동에서는 입체물류자동화 공정을 위해 총 50대의 AGV가 '열일' 중이었다. AGV는 지능형 무인창고에서 부품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실시간으로 재고를 파악해 최대 600kg의 적재함을 자동 운반해줬다. 덕분에 사람이 부품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상에 AGV가 있다면 천장에는 고공 컨베이어가 있었다. 물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부품 박스를 올리면 작업자 바로 앞까지 이어진 고공 컨베이어가 최대 30kg의 박스까지 옮겨준다.
LG전자는 원활한 물류를 위해 LG유플러스와 협업해 LG스마트파크에 5G 전용 통신망을 구축했다. AGV도 5G 전용망을 기반으로 한다. 이수형 H&A DX·혁신운영팀 선임은 "전세계에서 AGV에 5G를 적용한 공장은 이곳이 최초"라고 말했다.
입체물류자동화는 제품 조립 공정에도 적용된다. 냉장고가 조립되는 과정을 보니 라인 1층에는 냉장고 부품, 2층에는 냉장고 문이 짝을 맞춰 이동했다. 디지털 정보화 기반의 유연 생산시스템이 자동으로 모델을 분류해주기 때문에 혼류생산 방식 도입이 가능했다는 게 LG전자 측 설명이다.
혼류생산은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두 가지 이상의 모델을 만드는 방식이다. LG스마트파크에서는 1개의 생산라인에서 최대 58종의 모델을 생산한다. 예를 들어 한 생산라인에서 오브제컬렉션 냉장고와 프렌치도어 냉장고를 함께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10분 앞서 상황 예측해 생산성 UP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은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은 디지털 가상공간에 현실과 동일한 대상을 만드는 기술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미리 돌려보는 것이다.
LG스마트파크에서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30초마다 공장 안의 데이터를 수집·분석, 10분 뒤 생산라인의 상황을 예측한다. 이를 통해 만약 10분 뒤에 라인 일부에서 자재가 부족해 정체될 예정이라면 미리 해결하도록 안내한다. 미래에 일어날 자재 품절 사태를 미리 예방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LG전자 측은 "입체물류 자동화 시스템은 업무와 공간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해 자재 공급시간을 기존 대비 25% 단축했고 물류면적은 30% 정도 감소했다"며 "예기치 못한 설비 고장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시간도 96% 줄었다"고 설명했다.
470m의 냉장고 조립 라인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쉴 새 없이 냉장고 문을 붙이는 로봇이었다. 생산라인에 자리 잡은 로봇팔은 20kg이 넘는 냉장고 문을 가뿐히 들어 빠르게 본체에 끼워 넣었다.
이수형 선임은 "냉장고 도어 부착을 자동화한 것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며 "문을 붙일 때 허용되는 오차는 0.25mm인데 이는 A4용지 3장 두께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LG전자는 로봇팔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3D 비전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했다. 로봇이 어렵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작업자는 생산라인이나 로봇 작동상황 등을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한다. 시간당 제품 생산 대수를 늘리면서 품질과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로봇팔 도입 후 시간당 제품 생산 대수는 20% 가까이 증가했다.
인체에 유해한 산화가스가 발생하는 용접 공정도 로봇이 진행했다. 올해 3월부터 지능화 용접이 가능해져 양품 불량 조건을 스스로 판단, 용접 중 이상이 감지될 경우 딥러닝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보정해준다. 다만 여기서 로봇이 진행하는 부분은 총 13개의 용접 지점 중 절반 정도다. 아직 단계적 적용 중이다. 향후 고객 피드백에 따라 로봇을 활용하는 공정을 늘려갈 예정이다.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로 이뤄진 데 비해 다수의 직원이 모여 작업 중인 구역도 있었다. 반도체가 탑재된 PCB(인쇄회로기판)를 부착하는 공정이었다. 냉장고의 온도 조절 등 두뇌 역할을 하는 중요 공정인 만큼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고 했다.
강명석 키친어플라이언스생산선진화Task 리더는 "현재 자동화율은 65% 수준"이라며 "정형화돼 있지 않은 공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넘어야 할 부분이 있어 기술 스터디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3초마다 냉장고 한 대 생산
이같은 스마트 공정을 도입한 덕분에 LG스마트파크에서는 13초당 한 대의 냉장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15~16초에 한 대를 생산했다면 대당 2~3초 정도 앞당긴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당 생산량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생산시간을 13초로 보면 1시간당 생산하는 냉장고는 275대, 15~16초로 보면 225~240대 수준이다. 1시간에 최대 50대까지도 더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LG스마트파크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종 완공되는 시점은 2025년이다. 2025년에는 고도화된 냉장고 생산라인 1개를 추가하고 오븐, 식기세척기 라인도 1개씩 확대 구축해 생산 효율과 품질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최종 완공 이후에는 제품 생산 시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강 리더는 "완공 시점에 운영하는 모델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동화·생산 속도 등에 있어 현재 적용된 1단계보다 발전된 수준으로 목표를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는 창원에 이어 글로벌 생산거점에도 단계적으로 이같은 지능형 자율공장을 도입할 계획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창원 LG스마트파크는 다품종 맞춤 생산 체계를 통해 혁신적인 고객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변화"라며 "생산 효율을 획기적으로 늘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노력을 펼쳐 글로벌 가전기업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