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
최근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입니다. 정 회장이 그룹의 수장으로 오른 이후 현대차그룹 경영 색깔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고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 임원은 "내부에서 주요 그룹 회장들이 기사와 SNS 등에서 얼마나 많이 거론되는가를 상시적으로 체크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지게 좋은 평가가 나오는 사람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업계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정 회장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관심 있게 보고있다는 방증입니다.
정 회장은 지난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습니다. 당시 기아차는 국내 레저용 차량(RV) 시장 위축과 현대차와의 차별성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실적이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정 회장은 그런 기아차의 구원투수로 등장했습니다. 오너가 3세인 만큼 책임경영을 할 것이란 희망과 동시에 경영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정 회장은 당시 기아차 사장 부임후 전면적인 체질 개선 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상품 기획 단계부터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특히 기아차를 '디자인 기아'라는 이름 아래 디자인에 방점을 찍으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합니다. 당대 손꼽히는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차만의 독특한 패밀리룩을 완성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정의선 회장 체제 키워드는 '변화'
사실 정 회장에 대한 외부 평가는 그 전부터 좋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이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할 당시 늘 그림자처럼 아버지 옆에서 보좌했습니다. 절대로 드러나는 일이 없었죠. 하지만 그에 대한 그룹 내부 평가는 늘 좋았습니다. 당시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회의에 들어가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고 오는지, 자신만의 철학과 방향성이 명확했다. 그러면서도 겸손했다"고 말했습니다.
업(業)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겸손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습니다. 임원들뿐만 아니라 평사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늘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룹 수장에 오르면서 현대차그룹도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내부적으론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를 조성하는데 공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해 신년회를 기존과 달리 본사가 아닌 남양연구소에서 타운홀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또 임직원들의 직급 체계를 간소화하는 등 그룹 내부 분위기 쇄신에 나섰습니다. 그룹이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명확히 하고 그곳에 그룹역량을 집중시켜, 임직원들이 회사목표에 자연스럽게 체화되도록 하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MZ를 겨냥하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MZ세대'입니다. 현대차그룹이 MZ세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MZ세대는 현재의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주류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에도 MZ세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기존 회사의 문화에 접목하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MZ세대는 향후 현대차그룹의 주요 소비층이자, 과거의 또래 연령대와 달리 구매력도 높습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대상입니다. 최근 여러 대기업들이 잇따라 회사 차원에서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 접근법은 좀 달랐습니다. 정 회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정 회장은 최근 연세대 경영대학의 조직학습 토론 강의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의주제가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전략이었던 만큼 강의 주제의 당사자였던 것도 있지만 대기업 총수가 대학 강의를 참관하고 학생들과 의견을 나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는 반응입니다. 심지어 정 회장은 강의 후 학생들과 소주·맥주 폭탄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5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 끼’ 행사에 참석해 MZ세대 30명을 직접 만났습니다. 정 회장은 참석자들과 햄버거로 점심을 함께 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경영철학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참석자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는 평가입니다.
'정의선 회장 이미지' 심기
정 회장이 MZ세대와 접점을 늘리는 것은 현대차그룹 이미지 개선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자동차 제조업이라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하는 혁신기업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MZ세대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만큼 '정의선 이미지'를 현대차그룹에 긍정적으로 투영시키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잠재적 소비군인 MZ세대를 우군으로 만들 수 있고, 과거 현대차그룹의 딱딱한 이미지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획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현대차그룹이 방점을 찍고 있는 전기차, 모빌리티 등 혁신의 이미지가 접목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면서 "이는 현대차그룹이 이미지 메이킹에 좀더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습니다. MZ세대와 벽을 허물려는 현대차그룹의 시도가 향후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