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결단에 나설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칼자루를 쥔 최상목 권한대행이 이를 휘두르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 영향력이 상당한 법안 통과 여부를 쉽사리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계 "상법 개정안 안된다…골든타임 놓치면 안돼"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 8곳은 조만간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8단체는 상법 개정안이 최초로 발의된 이후부터 이를 강하게 반대해왔는데, 마지막 의사 결정권자인 최 대행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은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나라 법 상에는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에 대한 '비토'권이 있다. 이는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정부에게 전달되고 15일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최 대행은 오는 28일까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재계는 거부권 행사 시일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최 대행을 연일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최 대행은 이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이르면 주중, 늦어도 내주께 결정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권한대행' 권리를 함부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최 대행이 그간 야권을 중심으로 국회를 통과한 여러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는 당장 국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이뤄졌다"라며 "상법 개정안의 경우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는 있을것으로 보이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상법 개정안의 경우 야권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핵심 정책 중 하나인데 정권이 바뀔 경우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라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가 결정된 이후까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가뜩이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쟁 국가와 비교해 더 강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상황인데, 상법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경쟁력이 더욱 악화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상법개정안 '왜' 반대할까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 더해 '주주'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경영진이 경영활동을 하면서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과 동시에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재계에서 우려하는 대목은 주주들이 워낙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은 장기적인 투자관점에서 보수적으로 주주환원책을 펼칠 수 있다. 기업의 지배주주나 우리사주 등은 이러한 의사결정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당장의 주가 상승 혹은 배당 확대 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모펀드 혹은 소액주주 입장에서 회사는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경영을 펼쳤기 때문에 법을 위반한 셈이된다. 이는 결국 소송 등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법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다른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등 가뜩이나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원활한 경영활동까지 저해할 수 있다"며 "주주들의 이익을 높이되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을 막지 않는 내용으로 관련법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상법 개정안이 다양한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도 도움이 되고, 전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이유에서다.
한 야권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 집단소송제부터 최근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재계에서는 관련 법이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정작 법이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 기업활동은 더욱 투명해지고 건강해지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상법 개정안은 최근 국제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업의 투명한 거버넌스(지배구조)확립에도 도움이 되는 데다가 코로나19 이후로 급격하게 늘어난 소액 투자자들에게도 이점이 되기 때문에 득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