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화그룹이 1억 달러(1469억원)에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 구조를 보면, 잠재적인 부채의 위험보다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둔 인수합병(M&A)으로 분석된다.
필리 조선소는 작년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한화그룹 입장에선 인수대금에 악화된 재무구조까지 고려하면 3484억원대의 프리미엄을 얹어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

한화그룹은 작년 6월 노르웨이 아커와 필리 조선소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맺은 데 이어 12월에 인수 절차를 최종 완료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의 공동 인수 구조로, 지분구조는 6대 4다.
1997년 미국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필리 조선소를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MRO) 사업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투자였다. 한화오션은 선박 건조를, 한화시스템은 자율운항 기술 개발을 맡는 구조다.
한화그룹이 필리 조선소 인수에 현금만 쓴 것은 아니다. 2000억원이 넘는 부실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필리 조선소 부채(4982억원)는 자산(2968억원)보다 많다. 자본이 마이너스(-) 2014억원인 완전자본잠식 상태란 얘기다. 한화가 완전자본잠식 회사를 1469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필리 조선소 부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타유동부채 3979억원이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부채가 3979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보통 M&A 과정에서 순자산 보다 비싸게 쳐준 프리미엄을 영업권으로 나타내는데, 필리 조선소 영업권은 3484억원에 달했다. 필리 조선소가 미래에 수익을 내면 문제가 없지만,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내면 무형자산인 영업권은 손실로 돌변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작년 필리 조선소 매출은 4967억원이었다. 이 기간 영업손실은 1647억원, 당기순손실은 1923억원에 이르렀다. 작년 말 M&A가 마무리되면서 한화그룹에 필리 조선소 실적은 반영되지 않았지만,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당장 올해부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화그룹은 필리 조선소 정상화를 위해 그룹내 '전략·재무통'인 데이비드 김 대표를 수장으로 선임했다. 한화에너지 USA 홀딩스 CFO, 한화디펜스 USA 부사장을 거친 그는 필리조선소 인수를 주도했다.
한화그룹은 필리 조선소에 이어 미국 해군 함정 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 지분 19.9%를 확보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총 3370억원을 투입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회사의 글로벌 프로젝트 안에서 움직이는 투자로, 이제 막 인수가 마무리돼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채를 털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한화 시스템이 적용되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다"며 "생산 자동화 등 설비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