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는 혼자 오지 않는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논란으로 불안했던 증시는 이번엔 시리아라는 뜻하지 않은 악재와 만나게 됐다. 시리아 내전은 하루이틀된 사안이 아니지만 미국이 군사개입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공습 계획이 흘러나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단기간에 마무리된다면 지나가는 재료에 그칠 수도 있지만 공습이 장기화될 경우 금융시장 기류를 뒤바꿀 수 있다.
◇ 시리아 군사개입, 위험한 이유
27일(현지시간) NBC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이르면 이번 주중 시리아에 대한 첫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29일이 첫 공습날짜로 점쳐지고 있다. 앞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을 높였다.
미국은 지난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공습에 나섰고 내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은 바 있다. 이미 2011년부터 내전이 이어진 시리아의 원유 생산량은 많지 않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일일 33만배럴 선에 불과한 정도다. 이라크가 지난해 300만배럴을 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시리아에 매장된 원유 규모는 25억배럴로 이라크를 제외한 다른 이웃국가들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군사개입으로 긴장감이 높아질 경우 최근 이집트 혼란과 겹치며 유가 압력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특히 원유 트레이더들은 군사개입으로 원유 공급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군사개입 사태가 더 확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도 군사개입을 고려하고 있는데다 시리아의 우방국인 이란 등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지원에 나서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소시에떼제너럴은 "시리아 군사개입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이라크 등의 원유생산까지 차질을 빚는다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유럽 회복 지연·이머징 위기 키울 우려
시리아 군사개입은 최근 쏟아지고 있는 악재에 대한 부담을 더할 전망이다. 내전이 장기화되면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유가 상승이 불가피하고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융시장은 재빨리 반응했다. 국제 유가는 3% 가까이 상승했고 미국 증시를 비롯, 글로벌 증시는 급락했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크게 뛰고 있다.
외신들은 투자자들이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올해 남은 기간동안의 투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매머드급 악재 여부를 떠나 일단 조정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리아 사태로 유가 상승이 심화되면 중동산 원유수입 비중이 높은 유럽 경기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유가상승 뿐 아니라 위험자산 회피를 더욱 부추기며 최근 위기설이 부각된 인도 등 이머징 경제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미국 역시 최근 소비지출 증가에서 유가 안정이 기여한 정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유가가 갑작스럽게 오르면 영향이 불가피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탄력을 받기 시작한 유럽 경제 입장에서 고유가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이머징 아시아 국가들도 대부분 원유를 수입하고 있어 경상수지 적자폭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 압력으로도 이어져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다.
코메르쯔방크도 "이미 경상수지 위기 우려가 부각된 상황에서 유가마저 오른다면 이머징 국가들에게는 '최후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양적완화 축소 지연?..장기화 여부가 관건
다만 일부에서는 시리아 사태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한다. 유가 상승 등이 글로벌 경제 회복에 지장을 줄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존 계획을 예정대로 감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중국을 비롯해 과거만큼 원유 수요가 크지 않고 미국의 전략적비축유 등 원유 재고가 풍부한 만큼 큰 유가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정유사들의 원유 수요 측면에서 최근 수개월간 일평균 배럴당 240만달러까지 감소했다. 또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의 경우 지난 1분기 원유 수입 규모가 정점을 찍었고, 지난 7월 수입이 늘긴했지만 대부분 재고비축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역시 연평균 소비규모에 기반한 원유 재고분이 5년전 150일분에서 최근 269일분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결국 장기화 여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단기간에 마무리되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치겠지만 장기화되면 제2의 이라크전과 같은 중기적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은 불안심리가 확산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