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금융투자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은행(IB)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위탁매매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M&A를 통해 자기자본이 5000억원 이상 증가하는 증권사에 대해 종합금융투자업 지정 자기자본 요건을 3조원 이상에서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낮춰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 종합금융투자업을 영위하는 곳은 대우와 삼성, 한국, 현대, 우리투자증권이다. 이 중 2곳이 매물로 나왔고 NH농협이 우리투자증권을 가져가기로 했다. 증권사로서는 새 먹거리를 위해 IB를 확대하는 것이 필수다. 특히 종합금융투자업에만 허용되는 업무들이 정해지면서 선점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도 크고 일부 업무는 이미 시장이 클 만큼 컸다는 지적도 나온다.
◇ `천편일률` 전통 IB 벌써 한계 부딪혀
IB 발전단계로 보면 국내 증권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위탁매매에서 벗어나 기업공개(IPO)나 인수 주선, M&A 중개 등의 업무 등을 하고 있지만 이는 전통적인 IB 영역에 속한다.
전통적인 IB 영역에서의 증권사 실적은 변변치 못하다. 지난해 주식이나 신주인수권 등 출자증권 관련 인수 주선 실적은 전년대비 크게 위축됐고 채권 쪽 역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IPO의 경우 증권사 인수실적이 74.2%나 줄면서 수수료 수입도 57.5%나 급감했다. 저금리 기조로 채권발행 수요가 증가한 것이 그나마 이를 일부 상쇄했다.
증권사 규모별로 인수 주선 수수료 수익 비중에서도 대형사들이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절대적인 규모가 크긴 하지만 종합금융사업자나 대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세를 탔고 중형사들이 오히려 약진했다. M&A 자문 수수료도 감소했고 수수료 수익면에서 중형사들이 약진이 두드러졌다. 절대적인 자본규모가 IB 능력을 좌우하진 않는 셈이다.
특히 대형사부터 중소형사, 외국계에 이르기까지 투자은행 업무에서조차 대부분 수익구조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60개가 넘는 증권사가 같은 고객,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IB 업계에서도 과도한 수수료 경쟁이 나타나며 증권사 스스로 제살깎기가 벌어지고 있다. 김선영 예금보험공사 연구원은 "수수료율 인하 압력이나 수수료 덤핑 관행이 증권사 수익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이는 자본 규모가 큰 대형사의 자본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중소형사 역시 재무건전성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출처:나이스신평, 금융정보통계시스템(단위:십억원, %) |
◇ 위험 IB 육성에 정부도 나섰다
국내 증권사들과 달리 미국 등 선진국들은 자기자본 거래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등 어느 정도 위험을 떠안는 IB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산관리와 프라임 브로커, 자기자본투자, 고유계정 거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 등도 포함된다.
국내 증권사들이 대부분 전통적인 IB 업무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일부에게만 위험 IB를 허용하고 있는 영향도 크다. 지난 8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부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증권사에 대해서만 기업신용 공여와 전담중개업무를 영위할 수 있게 했다. 전담중개업무에는 위험 IB로 분류되는 프라임 브로커가 포함돼 있다.
프라임 브로커는 헤지펀드에 증권 대여와 자금지원, 재산 보관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헤지펀드의 레버리지가 크기 때문에 자기자본이 어느정도 받쳐줘야 한다.
종합금융투자업자로 선정되면 분명 그렇지 못한 증권사들이 영위할 수 없는 영역을 선점할 수는 있다. 현재 2조원대의 자본을 가진 증권사는 신한과 미래, 대신과 하나도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정부는 종합금융사업자의 신규사업 진출을 통해 이들이 중소형사와는 다른 자본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업무를 영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차별화된 수익구조가 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면 자연스럽게 업계 구조조정 속도를 높일 것이란 예측도 가능하다.
◇ 리스크만 늘 수도..은행과도 중첩
다만 신규업무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또다른 리스크를 지게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취급하게 될 기업여신은 신용리스크를 키울 수 있고 유동성 리스크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은행과 결과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부담이다.
앞선 김선영 연구원은 "기업여신을 주업무로 해온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관리 능력이 취약할 수 있다"며 "증권사들이 단기로 조달한 자금으로 장기대출에 나설 경우 조달-운용기간 사이에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의 지난 3월말 차입부채 중 단기자금 비중은 50%에 육박하며 시중은행의 26%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지난해 종합금융사업자의 자기자본이익률(ROE) 역시 2.7%로 국내 시중은행(7.12%)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정길원 대우증권 연구원도 "이미 다양한 선발진입자들이 존재하지만 큰 수익을 얻고 있지 못하다"며 "프라임 브로커 서비스 등은 대형사들 안에서 이미 과점이 진행되면서 후발주자의 실익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