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환율보고서를 앞두고 외환시장이 숨죽이고 있다. 증시도 직간접적으로 미칠 여파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였던 상황에서 환율보고서는 달러-원 환율 하락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 증시 입장에서는 원화 강세가 외국인의 주식 매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수출주에는 부담이 적지않기 때문에 과도한 원화 강세를 마냥 반길 수만도 없다.
◇ 韓, 환율보고서 타깃 될까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는 주요 교역국의 경제여건과 경제정책 운용, 환율 수준과 외환정책에 대한 평가가 담기고 환율조작국을 지정해 제재에 나서기 때문에 항상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올해의 경우 연초 베넷해치카퍼(BHC)법안 발의로 환율보고서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BHC법안은 지난 2월 발표된 '무역촉진법2015' 중에서 교역상대국의 환율에 관한 규정을 통칭하는 법이다. 미국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국가를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명시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법안이 적용된 환율보고서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은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심층분석대상국 지정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심층분석대상국에 선정되면 국제통화기금(IMF)협의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재를 받게 돼 교역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선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50%)보다는 낮지만, 대미 무역흑자가 적지 않다보니 환율조작국이 될 수 있는 아시아 주요 제조업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 원화 강세 압력 가중 우려
최근 원화가 유독 강세를 보인데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 영향이 컸다. 실제로 외환당국도 이를 의식해 시장 개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여파로 달러-원 환율은 지난주 1130원선까지 급락했다.
최근 원화 가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완화되고 신흥국 통환 전반이 강해지면서 이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여기에 환율보고서 발표까지 겹치면서 강세가 심화됐고 당분간 원화가치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달러-원 환율이 1100원선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나금융투자는 "BHC법안이 제시하는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0순위"라며 "한국이 타겟이 될 소지가 있고 과거 미국 재무부가 한국에 대해 언급한 이후에는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심층분석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포함되지 않는다면 미국 환율보고서 발표 이후 원화 강세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외환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고 있진 않다"며 "환율조작국에 포함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으며, 실제 포함되지 않는다면 환율이 1150원선까지 재상승할 것"으로 점쳤다.
◇ 증시 '과유불급'
환율에 민감한 증시 입장에서는 원화 강세가 동전의 양면을 가지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원화 강세가 강화되면 중단기적으로는 원화 자산 가격이 오르며 증시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수출 부담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에는 부정적이다.
반대로 환율조작국 미지정으로 원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선다면 수출주 부담을 덜 수 있는 반면 최근 부쩍 활발해진 외국인 주식 매수는 약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외국인은 지난 12일부터 9거래일째 순매수를 지속 중이며 이 기간 순매수 규모도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코스피가 2000선을 회복한 것은 물론 지난 21일 2020선 돌파의 주역도 외국인이었다.
하이투자증권은 "외국인 수급은 미국 환율보고서와 이번주 예정된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회의 결과에 따른 환율에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IG투자증권도 "환율보고서와 일본은행(BOJ)의 추가 정책 시행 여부를 주목해야 한다"며 "보고서에 원화 약세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된다면 외국인이 원화강세에 베팅하는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도 "환율보고서에서 강세로 돌아선 유로와 엔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중국과 한국 등에 강세압력이 언급된다면 한국 증시의 단기 랠리 환경에는 가장 좋은 조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