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공부는 해서 뭐해. 무술은 익혀서 뭐해. 나 같은 평민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걸. 흑흑. 혜령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지를 원망하는 감정을 더 끌어내서 해보세요. 그냥 책을 읽으면 안 되고 감정 표출을 해야 합니다. 연기력을 끌어올리는 거죠."
연기학원의 수업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KB증권 임직원들의 봉사활동 현장이다. 이 자리에선 동화책의 내용처럼 책을 읽기조차 쉽지 않은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희망의 목소리 나눔활동'이 한창이다.
◇ 다문화가정에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
KB증권 임직원 40여 명은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에 모여 애니메이션 성우에게 코치를 받으면서 동화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강의를 맡은 성우 이성헌 씨는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발음도 중요하지만 표현력이 좋아야 한다"면서 "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마음으로 때로는 과장도 하고 강약 조절도 하며 해달라"고 주문했다.
▲ KB증권 임직원들이 성우 이성헌 씨에게 사전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KB증권 |
▲ KB증권 임직원들이 목소리 기부를 위한 녹음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KB증권 |
때로는 발음이 꼬이기도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해 진행 속도는 더디지만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따뜻한 마음이 실려 예쁜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중간중간 "나는 재능이 없나 봐요. 저한테는 연탄 나르기 봉사가 제격인데" 등의 자책도 쏟아졌다. 하지만 직원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봉사에 참여한 김윤영 KB증권 무교지점 차장은 "주변에 다문화가정이 많아졌는데 집에서 우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마음으로 녹음에 임했다"며 "떨리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KB증권 임직원들이 목소리 기부를 위한 녹음을 하고 있다. 사진=KB증권 |
◇ "그 어떤 목소리보다 아름다웠다"
KB증권 '희망의 목소리 나눔활동'은 지난해 KB증권이 양천구 공동 다문화가족 스마트도서관 개관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한글과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도록 KB증권 임직원들이 동화 속 배역을 맡아 재미있고 실감 나는 이야기를 직접 녹음하는 목소리 재능 기부 캠페인이다. 기존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 기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책을 잘 읽지 못한다는 문제 의식이 생겼고 목소리 기부로 이어졌다.
김지영 알로하 아이디어스 사회적기업 대표는 "다문화가정의 경우 엄마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실제로 다문화가정 자녀의 어휘력이 일반 가정의 10%밖에 안 돼 취학 후 학습능력 격차가 점점 커진다"고 전했다. 그만큼 동화책 목소리 기부 활동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 녹음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는 오온수 팀장(왼쪽부터)과 김윤영 차장. 사진=KB증권 |
녹음을 하던 오온수 KB증권 WM리서치부 멀티에셋전략팀장은 "집에서 7살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이조차 어렵다 보니 어릴 때부터 넘기 힘든 장벽이 생기는 건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KB증권의 '희망의 목소리 나눔활동'으로 목소리 동화를 접한 한 다문화가정은 "동화책을 들려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면서 "베트남어와 한국어 모두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임직원들의 목소리로 녹음된 경제 동화책 18권은 양천구 공동 다문화가족 스마트도서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 KB증권 임직원들이 봉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B증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