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기자수첩]유치원 대란과 워킹맘의 눈물

  • 2019.03.04(월) 16:18

그야말로 유치원 대란이다. 지난해 말 유치원 폐원 사태를 겪으며 선택할 수 있는 유치원 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고, 그마저 남은 유치원에 아이들이 몰리면서 입학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왜 하필 우리 아이 유치원 입학할 시점에…'라며 운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대기 번호가 돌아오는 순간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라며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비리 사태를 들여다보기보다 우리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유치원 찾기에 급급했고, 입학 통지서를 받은 날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믿었다.

입학을 앞둔 연휴, 아이는 유치원에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설렘에 가득 찼고 우리 가족은 함께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며 향후 3년 동안의 유치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 개학 연기 유치원 명단에 우리 아이가 다닐 유치원 이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 유치원 폐원 사태 속에서 진행한 입학설명회에서 우리 유치원만큼은 투명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최우선임을 강조했고, 바로 지난 주말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길 만한 교육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해 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아무런 설명도 안내도 없이 개학 연기 명단에서 유치원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원생 모집 시즌이 한참 지난 뒤 단체 행동을 결정한 것은 아이들을 볼모로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현실적인 고민이 떠올랐다. 우선 몇 밤 자면 유치원에 가냐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가 시급했다. 그리고 당장 출근하면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또 사태가 마무리된다 한들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맘 카페에는 유치원 사태를 성토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부 전업맘들은 차라리 가정 보육을 하게 되더라도 아이를 퇴소시키겠다고 했다.

기자의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워킹맘은 답이 없다. 자리가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이번 사태와 무관한 영어유치원이나 놀이 학교에 보내기엔 교육비가 부담이다.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이 사단이 났는데 기어코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하는 부모를 비난하는 글도 눈에 띈다. 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학부모도 함께 등원 거부나 퇴소 조치를 하고, 해결이 되지 않는 유치원에 아이 교육을 맡기면 안된다는 논리다. 맞다. 동의한다. 그런데도 유치원에 왜 보내는지 묻는다면? 할말이 많다.

우선 우리 아이가 유치원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 운 좋게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녔고, 7세까지 다닐 수 있었음에도 우리는 유치원을 택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도 아니지만 아이가 언제부턴가 보육 위주의 어린이집을 지루해했고, 어린이집은 대부분 낮잠 시간이 있는데 낮잠을 자는 것도 싫다고 했다.

아이 특성에 맞게 많은 활동과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워킹맘은 어린이집 하원 후 학원이나 문화센터를 데리고 다니기엔 물리적으로 부담이 크다.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할머니께 학원 픽업까지 부탁드리기도 죄송스러웠다. 게다가 요즘엔 학원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차라리 학원 2~3곳을 다니는 것보다 유치원비가 더 저렴하니 유치원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면 되지 않냐는 반문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구에 국공립 유치원은 전체 4개에 불과하다. 인구가 몇 명인데, 4개란 말인가.

추첨에서 될 리도 없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가까운 국공립 유치원에 문의하니 5세반은 무조건 전원 오후 1시 하원이라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1시부터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는 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럼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이나 놀이 학교에 보내면 해결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교육기관들의 경우 교육비만 기본 한 달에 100만원 내외다. 서민 계층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수준이다.

아이를 불안 속에 맡기는 엄마라는 누군가의 비난에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사태가 일단락되어 우리 아이가 원래 가기로 한 유치원에 정상 등원할 수 있게 하는 일뿐이다. 왜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뿐인지 답답한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서 이번 사태가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