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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허울뿐인 자본시장 규제 완화

  • 2019.07.17(수) 15:51

한국판 골드만삭스 목표와 거리감
규제 완화, 형식에 그쳐서는 안 돼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자"

2009년 자본시장법을 도입할 당시에도,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금융투자업계에선 10년째 같은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0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이 목표에 가까워졌을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57개 증권회사의 자기자본 총계는 56조9323억원이다. 자본시장법이 도입될 당시인 2009년 3월 말 60개 증권회사 자기자본 총계가 31조784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운 성장이다.

개별로 보더라도 국내 증권사 중 자기자본 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3월 말 기준 8조1657억원으로 합병 전 대우증권 시절 2조5645억원과 비교해 급성장했다. 당시 자기자본 규모 1조6898억원의 미래에셋증권과의 합병도 성장에 한몫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골드만삭스와 비교하면 어떨까. 골드만삭스 자기자본은 78조원에서 100조원대로 올라서 국내 초대형IB와 여전히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내 전체 증권사 자기자본을 모두 합쳐도 골드만삭스 한 회사와 자본 규모가 두배가량 차이가 날 정도다.

"10년 전과 다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정부와 업계의 의지, 금융 환경, 투자자 인식 등 모든 것이 10년 전과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10년 전 자본시장법 도입 당시엔 업계가 브로커리지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었기에 의지가 부족했지만 지금은 기업금융(IB) 없인 살아남을 수 없게 돼 IB 강화가 필수다.

정부 역시 금융투자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추상적인 목표에 그쳤지만, 지금은 벤처중소기업과 4차산업 육성을 위한 모험자본 조달을 위해선 자본시장 활용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민 노후자산 증식을 위한 투자 문화 형성도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투자자도 증권회사라 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투자를 통해 개인 자산을 늘리고 투자가 기업과 경제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최근 차이니스월 규제 폐지, 사모펀드 규제 완화,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 제도 도입, 기업공개(IPO) 제도 개편, 개인 전문투자자 확대, 증권거래세 인하, 금융투자업 인가체계 등 다양한 자본시장 규제 완화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현장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최근 나온 대책들이 아직 법령 개정을 거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이미 시행 중인 사항도 실무선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일례로 이미 2015년부터 사모펀드 진입 규제가 인가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며 사모펀드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지만 실무 과정에선 여전히 인가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경우 자기자본 20억원, 전문인력 최소 3인 이상, 물적 설비요건만 갖추면 등록이 가능해졌지만 금융당국 실무자들이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책임 문제 때문에 등록 시 여러 차례에 걸쳐 각종 서류와 확인을 요청해 인가와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과 차별화해 문턱을 없앤 코넥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코스닥 시장보다 상장 문턱을 낮췄고, 코넥스에서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할 때도 패스트트랙으로 신속 이전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투자자 보호를 내세워 깐깐한 조건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물론 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를 염두에 둔다면 관련 장치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낫다. 규제를 풀겠다고 하면서 기존 잣대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이 10년 전 자본시장법처럼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이고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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