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신(新) 순자본비율(NCR)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구(舊) NCR에는 적신호가 켜지면서 이를 높이기 위한 증권사들의 후순위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신 NCR 도입에도 불구, 여전히 구 NCR에 의해 자금 조달에 영향을 주는 신용등급이 좌우되면서 증권사들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래에셋대우, 후순위채 발행 '눈길'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13일 5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발행금리 3%에 만기는 6년이다. 금리 자체는 시중 은행의 예적금 이자율을 웃도는 수준으로 발행 조건이 좋은 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기관의 환매조건부채권(REPO)을 차입금으로 대체하기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한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대우가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것은 1년 만이다.
후순위채는 발행 당시엔 재무제표상 자본 항목으로 분류되나 만기가 5년 미만으로 남았을 때에는 자본으로 인정되는 금액이 매년 20%씩 차곡차곡 줄어든다.
또한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자본으로 반영되기도 한다. 작년말 자기자본이 10조원에 육박(9조1931억원)한 미래에셋대우는 이번 후순위채 조달로 재무건전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주목할 점은 미래에셋대우의 신 NCR은 이미 2033.7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이번 후순위채 발행으로 2406.22%로 372%포인트 더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 신 NCR 넉넉하지만…구 NCR 개선 노력
금융투자 업계에선 이번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빨간불이 들어온 구 NCR 지표가 높아지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NCR은 증권사들의 자본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6년 8월 영업에 필요한 자본에서 위험액을 뺀 뒤 업무 단위별로 필요한 자기자본을 각각 나눠 산출하는 방식으로 지표 산정 방식을 바꾸었다. 기존에는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나눈 뒤 백분율(%)로 환산해 도출했다.
감독 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신 NCR의 경우 해당 비율이 100% 미만이면 경영개선 권고, 50% 미만이면 경영개선 요구, 0% 선에서 경영개선 명령을 내린다. 현재 미래에셋대우 같이 신 NCR 지표로 2000%가 넘는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구 NCR 눈높이로는 사정이 다르다. 150% 미만에서 경영개선 권고가 내려지고, 120% 미만에 경영개선 요구, 100% 미만에서 경영개선 명령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2월 말 기준 440%를 웃돌던 미래에셋대우의 구 NCR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작년말 기준 154%로 내려오는 등 주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구 NCR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 후순위사채 발행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 구 NCR 지표도 신경써야⋯부담도 '2배'
실제 2016년 개정안 발표 이후 증권사들은 신·구NCR 모두 신경 써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금융당국의 경우 개편된 '신 NCR'을 잣대로 자본 적정성을 감독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구 NCR을 기준으로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이에 넉넉한 신 NCR에도 불구, 구 NCR 지표를 적정 수준에 맞추기 위한 증권사들의 자본 조달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의 경우 지난해 10월 3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사채를 발행했다. 5년 6개월 만기에 정기적으로 2.757%의 이자를 지급하는(무기명식 이권부) 조건이다.
미래에셋대우와 마찬가지로 단기차입금을 중장기 차입금으로 대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지만 마침 당시 하나금융투자의 구 NCR은 150% 밑으로 떨어지는 등 경고등이 켜진 상태였다.
메리츠증권 또한 지난해 연말 2000억원 규모의 사모 채권형 신종자본증권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발행했다. 발행 규모 2000억원에 금리 4.80%, 만기는 발행일로부터 30년이다.
2016년 하반기 300% 후반 대를 나타내던 메리츠증권의 구 NCR 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55%까지 하락한 상태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자본 적정성 평가 기준이 이원화되면서 증권사들만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 입장에서 구 NCR을 관리하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 조정에 따른 발행금리 증가 등 조달비용이 늘어나는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자본 적정성 기준을 신 NCR로 바꿔주면서 IB(기업금융) 사업을 크게 확장했는데, 신평사에서는 구 NCR을 잣대로 등급을 평가하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금융당국에서는 단 한번도 구 NCR을 관리하라고 증권사들에게 지침을 내린적이 없기 때문에 과도한 규제에 노출돼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라면서도 "증권사들이 구 NCR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