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힌 SK바이오팜이 흥행 대박을 터뜨리면서 코로나19 여파로 움츠러들었던 공모주 투자 열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우리나라보다 더 뜨거운 곳이 중국 공모주 시장이다. 특히 '중국판 나스닥'을 표방하며 개장 1주년을 맞은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은 중국 정부의 화끈한 지원 속에 정보기술(IT) 주들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 커촹반 공모주에 주로 투자하는 공모 펀드가 선을 보인다.
◇'나스닥 뛰어넘자'…등록제로 상장요건 대폭 낮춰
커촹반은 지난해 7월 22일 상하이증권거래소 내에 문을 열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직전 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 연설에서 미국의 IT주 중심 거래소인 나스닥과 같은 기술 전문 주식시장을 만들라고 직접 지시한 뒤 일사천리로 개장 작업이 이뤄졌다. 자국 유망 IT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을 도우면서 이들이 미국이나 홍콩 증시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중국에는 선전거래소에 성장형 기업을 위한 촹예반(創業板·창업판)이 이미 존재하지만 상장 기준이 엄격해 우수 IT 기업들이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일이 빈번했다. 실제 중국 대표 IT 기업이자 1세대 스타트업인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모두 미국과 홍콩 등 해외 증시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에 따라 중국 내에선 상장 문턱을 낮춘 새로운 거래소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커촹반의 상장 요건은 파격적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다른 중국 증권거래소와 달리 서류 적격 여부만 검증받으면 상장할 수 있는 등록제로 운영된다.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다. 상장 직후 5거래일간 가격 제한 폭이 없고 그 뒤에도 하루 상·하한 폭이 20%로 다른 중국 증시보다 넓어 투자자들의 접근이 더 자유롭다. 커촹반을 통한 실험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최근 선전거래소 촹예반도 커촹반을 따라 IPO 등록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1년 새 141개 기업 상장…알리바바 계열사, 세계 최대 IPO 추진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 기업들이 나스닥 상장을 꺼리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책이 더해져 지난해에만 70개 기업이 커촹반에 상장했다. 올 들어서도 상장 행렬이 이어져 지난 29일 기준으로 상장종목 수는 141개, 상장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은 409개나 된다. 시가총액은 2조 7900억위안(약 474조원)으로 개장 당시보다 4배 불어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커촹반에 상장한 기업들의 상장 첫날 평균 주가 상승률은 144%, 상장 후 14일 단순 평균 상승률은 184%에 달한다.
최근 들어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커촹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중신궈지(中芯國際·SMIC)는 지난 16일 커촹반에 상장하면서 532억위안(약 9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커촹반 사상 최대 규모의 IPO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인 앤트그룹도 홍콩 증시와 커촹반에 동시 상장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앤트그룹의 경우 현재 운영 중인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의 연간 사용자 수가 9억명 이상으로, 시장에선 이 회사 기업 가치를 무려 2000억달러(약 240조원)로 추정한다. 앤트그룹이 이 기업 가치를 바탕으로 상장하면 커촹반 IPO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은 물론 전 세계 IPO를 통틀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커촹반을 향한 중국 IT 기업들의 발길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되며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데다 신규 상장 역시 예전보다 까다로워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더 쉽게 상장할 수 있는 커촹반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간접투자 허용…한투운용 내달 펀드 출시
아직 외국인이 커촹반에 직접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기관투자자를 통한 간접투자는 가능하다. 중국 정부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전체 공모물량의 60~70%를 배정할 정도로 커촹반 흥행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커촹반 상장종목을 편입한 중국 공모 펀드를 운용하고 있거나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해 한화본토레전드중소형주증권자투자신탁(주식) 펀드에 커촹반 상장 주식을 담으면서 이름을 한화중국본토혁신성장증권자투자신탁(주식)으로 바꿨다.
근래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가장 적극적이다. 한국투신운용은 앞서 상하이 현지 사무소를 통해 커촹반을 중심으로 중국 공모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출시한 바 있으며 이르면 다음 달 중순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커촹반에 주로 투자하는 중국 공모주 펀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현동식 한국투신운용 상하이사무소장은 "연기금과 보험 등 4000여개에 이르는 기관투자자와 공모, 사모펀드들이 거의 매일같이 커촹반 공모주 청약에 나서고 있다"며 "중국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커촹반 공모주 청약 시 현지 기관투자자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만큼 외국인들도 중국 공모주 투자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