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선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증권(ETN)이 동시에 17개나 증시에 상장했다. 원유 선물 ETN 상장을 유보하던 한국거래소에서 추후 원유 가격 변동성이 커졌을 때를 대비해 새로운 상품들을 추가로 발행시키기로 방향을 바꾸면서다.
원유 선물 투자상품이 늘어나면서 제대로 된 가격에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원유 선물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종목수가 적어 거래량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었다.
유가 변동성 커지기 전 미리 준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7일 17개의 원유 선물 ETN이 상장됐다. 이날 상장된 상품의 전체 거래량은 10만9142건으로 기존 상장된 원유 상품인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 한 종목의 거래량 2217만5183건에 보다 적었다.
신규 상장된 상품중 가장 거래량이 많았던 종목은 하나 S&P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로 8만2533건 거래됐다. 다음은 메리츠 블룸버그 인버스 2X WTI선물 ETN(H)으로 2만4243건 거래됐다. 한 건도 거래가 되지 않은 상품도 있었다.
지난 2년 전 원유 ETN의 투자 수요가 늘어났을 때 신규 상장을 원하는 증권사들이 있었으나 원유 관련 상품들의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거래소는 상장신청을 유보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상품들의 가격이 낮아지고 변동성 관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로운 상품들을 추가로 발행시키겠다고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동시에 17개나 되는 원유 선물 ETN이 출시됐다. 특히 수요가 높은 원유 일간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 주로 상장됐다.
실제 레버리지 원유 ETN의 거래대금은 연초 이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경우 일평균 거래대금이 2월 50억원에서 지난달 121억원으로 142%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23억원에서 54억원으로 135% 증가했다.
레버리지 인버스 상품 거래대금 증가율도 두드러졌다.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과 신한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H)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62%, 76% 증가했다.
원유 레버리지 상품이 늘어나면서 유가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에 지표가치와 상품가격의 차이인 괴리율이 벌어지는 상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유가 변동성이 커지자 거래량이 늘면서 괴리율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제대로 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레버리지를 일으켜 원유에 투자하고 싶은 수요는 많으나 레버리지 상품 개수가 적었던 탓이다.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일부 발행사에서는 호가 조절을 위한 자체 보유수량이 모두 소진되기도 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업계와의 논의를 통해 원유 ETN을 일괄적으로 발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난 2월 발행사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연초부터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며 "앞으로 유가 변동성이 더 커질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존 상품에 문제가 생기기전에 정상적인 상품을 발행해야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발행사가 늘어나면서 투자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생기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사 부탁드립니다…기존 발행사도 신규 상품 상장
특히 기존 원유 선물 ETN을 발행한 증권사들도 새로 상품을 발행한 점이 눈에 띈다. 이들 증권사가 새롭게 상품을 발행한 이유는 저가화된 기존 상품의 관리가 어려워져서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상품 가격이 낮아 호가 조절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롭게 상품을 상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ETN 발행 증권사는 시장조성자(LP) 역할을 해야한다. 상품가격과 지표가치를 일정하게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품 가격이 낮아질 수록 변동성 조절이 어려워 진다.
실제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의 현재 가격은 135원이다. ETN의 호가조절을 위한 최소 호가단위(틱)는 5원으로 1틱만 올려도 가격이 3.7% 증가하게 된다.
기존 발행 증권사의 경우 투자자들이 새로운 상품으로 '이사'가길 원하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 투자자들에게 신규 상품이 상장됐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저가화 방지를 위해 신규로 상품을 발행한 만큼 최초 발행가격은 통상적인 경우보다 1만원 높은 2만원으로 설정했다. 2만원인 상품의 1틱을 올릴 경우 가격은 0.025% 증가한다.
멀리서보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신규 상장 ETN들은 거래소에서 기본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각 발행사별로 큰 틀에서 비슷하게 구성됐다.
우선 발행 만기일이 비슷하다. 만기일을 오는 2025년 5월 중으로 정했다. 원자재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변동성이 커질경우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기에 만기를 3년으로 설정한 것이다.
조기청산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거래소 상장규정 기준에 따라 △정규시장 종료시 실시간 지표가치(iiv)가 전일 장 종료시점 iiv 대비 80% 이상 하락한 경우 △장종료시점 iiv가 1000원 미만인 경우 △장종료시점 iiv 기준 괴리율이 100% 이상인 경우 상품은 조기청산에 따른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다만 각 발행사별로 추종하는 지수가 다르고 운용보수와 환 헷지 유무에서 차이가 난다. 미래에셋 인버스 2X 원유선물혼합 ETN(H)을 제외한 16종의 ETN이 블룸버그사에서 산출하는 지수와 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사에서 산출하는 지수를 추종하고 있다.
두 지수 모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된 WTI원유 선물의 일간수익률을 반영하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지수 레벨값이 차이가 난다. 현재 레버리지 상품이 추종하는 S&P DJCI 2X Leverage Crude Oil의 가격은 1.97달러이며 Bloomberg WTI Single 2X Leveraged TR의 가격은 91.94달러다.
각 발행사별로 운용보수에서도 차이가 난다. 가장 운용보수가 가장 낮은 상품은 메리츠증권에서 발행한 상품 2종으로 0.55%의 비용이 발생한다.
환 헤지 유무도 다르다. 미래에셋증권과 메리츠증권의 ETN은 모두 환 헤지를 시행한다. KB증권은 레버리지 ETN에 한해 환 헤지를 시행한다. 이외 모든 발행사는 모두 환 노출 상품을 내놨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환 헤지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더 높을 것으로 판단해 환 헷지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