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시중 증권사들에 재무건전성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기준 금리 인상을 비롯한 대·내외 악재로 인해 업황이 악화하면서 증권사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아직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지난 1분기 말부터 이상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증권사들의 재무 상태가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문제는 당장에 극적인 반전이 어렵다는 데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증권사들의 고단한 발걸음이 이어질 전망이다.
영업환경 악화가 결정적
10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자기자본 1조원 이상의 증권사 17개사 가운데 올해 1분기말 신NCR이 작년 대비 떨어진 증권사는 11개사로 집계됐다. 3분의 2 가까운 증권사 재무상태가 과거 수준으로 역행했다.
대형사 중에서는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의 낙폭이 비교적 크게 나타났다. 지난해 3월 말 1575%였던 삼성증권은 올해 1분기말 1155%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신한금융투자도 1646%에서 1220%으로 낮아졌다.
산출 방식이 다른 구NCR 기준으로는 더욱 우려스럽다. 수치로만 보면 13개사의 곳간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1110% 수준의 튼실한 NCR을 자랑했던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440%로 낮아졌다.
NCR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재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6년 8월 영업에 필요한 자본에서 위험액을 뺀 뒤 업무 단위별로 필요한 자기자본을 각각 나눠 산출하는 방식으로 지표 산정 방식을 바꾸었다. 기존에는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나눈 뒤 백분율(%)로 환산해 도출했다.
금융감독원은 신NCR의 경우 해당 비율이 100% 미만이면 경영개선 권고, 50% 미만이면 경영개선 요구, 0% 선에서 경영개선 명령을 내린다. 구NCR의 경우 150% 미만에서 경영개선 권고가 내려지고, 120% 미만에 경영개선 요구, 100% 미만에서 경영개선 명령이 나온다.
이 기준을 대입해 보면 증권사들의 NCR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닌 셈이다.
최근 들어 재무 상태 개선세가 꺾인 배경으로 증권사들의 실적 둔화가 거론되고 있다. 자산 가격이 강력한 조정에 직면하면서 영업환경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KB증권에 따르면 실적 모니터링을 하는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 대형 증권사 5개사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5512억원 수준으로 시장 전망치를 45% 가까이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동기대비로는 60% 이상 축소될 전망이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일평균 거래대금과 신용잔고가 감소하면서 브로커리지 관련 이익이 감소할 것"이라며 "주식시장 하락과 채권금리 급등의 영향으로 트레이딩 손익 또한 매우 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감원 유동성 관리 당부…반전 쉽지 않아
이에 금감원은 최근 증권사들에 유동성 관리를 당부하고 나섰다. 지난 달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등 금융투자업계와 첫 회동을 가진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재무건전성 악화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권산업의 건전성·유동성 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한 충분한 유동자금 확보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벌써부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신용등급 강등이나 목표주가 하락이 진행되고 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키움증권의 목표주가를 13만원에서 10만5000원으로 낮춰 잡았다. 그는 "업황 둔화를 반영해 목표주가를 하향하나 매크로(거시경제) 개선시 브로커리지 경쟁력 및 중장기적인 투자은행(IB) 성장 모멘텀이 유효해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말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은 '증권사 2022년 상반기 정기평가 결과 및 하반기 주요 모니터링 포인트' 보고서에서 SK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순영업수익 점유율 하락세에 따른 사업기반 약화, 2개 분기 연속 적자, IB영업 확대와 지분투자 과정에서 증가한 우발 부채 등을 신용등급 강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도 중소형사인 케이프투자증권에 대해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분류했지만 부정적인 견해도 같이 곁들였다. 금리상승 등 금융시장내 불확실성 확대로 IB와 운용부문의 수익 기반이 위축되거나, 이익창출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NCR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영업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적극적인 실적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