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던 외국인이 돌아왔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만 2조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톱 2' 기업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게 눈에 띈다. 달러 환산 코스피 지수 급락에 따른 가격 메리트가 커지고, 미국의 대중 규제 강화로 한국 업체들의 반사이익 기대감이 형성된 것이 외국인 귀환의 배경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이 기관투자자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환율과 금리 등 매크로 지표가 안정되지 않고 있는 만큼 외국인의 완전한 복귀를 단정 짓기엔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편식하는 외국인, K-반도체만 담는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지난 18일까지 코스피에서만 1조8869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달 2조원 넘게 팔아치운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이같은 순매수세에도 시장에서는 외국인이 완전히 돌아왔다고 보긴 어렵다고 해석한다. 특정 업종에 '사자'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은 반도체와 2차전지 업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대표주이자 코스피 시총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상당하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순매수 규모는 각각 8374억원, 7561억원으로 두 종목에 유입된 금액만 1조6000억원에 이를 정도다. 시장에서 외국인이 '선별적' 매수를 한다고 보는 이유다.
이처럼 외국인이 반도체 업종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가장 먼저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달러/원 환율은 7월초 1300원대를 넘어선 이후 급등하면서 두달반 만에 1400원선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달러 환산 코스피 지수도 대폭 떨어진 상황이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달러 환산 코스피 지수는 작년 7월초 형성한 전고점 대비 48%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3배까지 내려왔다.
미국의 대중 규제에 따른 경쟁국 대비 반사수혜 기대감도 한몫한다. 앞서 지난 7일 미 상무부는 미국산 반도체 관련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고성능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생산장비가 대상이다. 지정학적 갈등까지 고려해야 하는 대만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쟁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반사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대중 규제로 인한) 최대 피해국인 대만은 중국 관련 매출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 중국 회사들도 직접적인 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중 분쟁이 기술분야에서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주가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선별적으로 선택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코리아' 계속될까
개인과 기관이 모두 '팔자'에 나서는 와중에 외국인은 이들의 수급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수 우위를 보이는 외국인과 달리 기관은 이달 들어 코스피에서 1조3098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불안한 시장 환경에서 연기금의 보수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7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4.96%에 그치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 속 주식 수익률이 하락한 것은 물론, 금리 급등으로 채권 평가 손실액이 증가한 탓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의 자산배분 중심은 채권인데, 올해는 채권 투자 수익률도 많이 떨어진데다 영국 연기금 레버리지 투자 이슈 등으로 리스크가 커지며 추가 자금 집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 변동성이 완화되는 시점이 돼서야 채권부터 매수 포지션을 차츰 늘려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의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사자'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길 연구원은 "미국의 대중 규제 강도가 어느 정도까지 높아질지는 예측불가하지만, 최소한 중간선거 이전까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외국인의 한국 기업 선호가 보다 길게 연출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외국인이 추세적으로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넓혀갈지는 환율과 금리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 '투자확대' 의견을 갖고 있다고까진 보긴 어렵다"면서 "미국 기준금리가 4%를 찍고 더 올라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외국인이) 방향을 완전히 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코스피의 외국인 비중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내년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를 보고 선제적으로 매수가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업황 개선이나 무역흑자 전환 등 경기 회복 기미가 확인돼야 외국인의 매수세가 구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