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는 '토큰 증권'(Security Token)의 발행·유통체계를 다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최근 조각투자 열풍으로 다양한 디지털 자산과 플랫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가운데 이들을 제도권 내 증권으로 분류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조각투자도 주식처럼 규제...공식명 '토큰 증권'
5일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규율 내 토큰 발행·유통·규율체계 정비 방안을 공개했다. 지난달 제6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토큰 증권 발행(STO)을 정식 허용하기로 한 데 이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우선 '증권화된 토큰', '증권형 토큰' 등 분분했던 명칭을 '토큰 증권'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토큰'이 아닌 '증권'에 방점이 찍혔다. 증권의 새로운 발행 형태이자, 자본시장법 등 제도권 규율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증권은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 등 6가지인데, 현행 제도에서 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방식은 실물과 전자증권뿐이다. 여기에 토큰 증권이 새롭게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국이 토큰증권의 발행을 허용한 건 이른바 조각투자로 불리는 투자계약증권이나 비금전신탁에 대한 수익증권 등 새로운 유형의 자산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이 음식이라고 한다면 토큰 증권은 일종의 그릇인 셈이다.
이수영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토큰 증권은 계약을 담는 그릇이고, 그릇에 담기는 음식 내용이 실제 투자 대상"이라며 "정부는 그릇을 만들어 예전에 담기 어려운 계약 내용을 증권화하고 관련된 투자자 보호 체계를 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토큰 증권으로 분류된 자산은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다. 증권성 여부 판단 기준은 작년 4월 발표된 조각투자 가이드라인과 동일하다.
당국은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을 방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예시를 제시했다. 증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사례로 △사업 운영에 대한 지분권을 갖거나 사업의 운영성과에 따른 배당권 또는 잔여재산에 대한 분배청구권을 갖게 되는 경우 △발행인이 투자자에게 사업 성과에 따라 발생한 수익을 귀속시키는 경우 등을 언급했다.
국내에서 발행되거나 시중에서 거래된 디지털 자산이 증권성을 인정받을 경우, 위법으로 취급돼 제재를 받는다.
한편 당국은 가상자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된 상장폐지 지시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수영 과장은 "가상자산거래소는 당국 지시 때문이 아니라 본인들이 불법적인 증권 유통에 개입하면 안 되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 한다"며 "아무런 규제가 없는 영역에 증권 규제를 적용해 상장된 (가상자산을) 폐지한다는 건 굉장히 섣부르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전했다.
증권사 아니어도 발행 가능...자기자본 허들 20억~30억원
발행체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증권사 없이도 토큰 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현재 계좌관리기관은 한국예탁결제원과 증권사, 은행 등이다.
당국이 정한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요건은 다음과 같다. 분산원장 요건을 충족하고 법조인, 증권사무 전문인력, 전산 전문인력을 각 2명씩 둬야 한다. 또 투자계약증권 발행량에 비례한 기금을 적립해 손해배상에 대비해야 한다. 최초 발행이나 발행수량을 변동할 때 혹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발행총량 관리를 맡은 한국예탁결제원에 통보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기자본·물적설비·대주주·임원 등 요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수영 과장은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자기자본 요건은 20억~30억원 수준으로 본다"며 "하위법률 개정 과정 중에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 뒤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소액공모도 확대한다. 당국은 이를 위해 2019년 10월 발표된 사모 및 소액공모 제도 개편방안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 개편안은 현행 소액공모 티어(Tier)1 한도를 1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상향하고, 이와 별도로 100억원 한도인 소액공모 Tier2를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액 공모 장외플랫폼, 공시 부담 덜어준다
당국은 아울러 다자간 거래를 매매체결 할 수 있는 장외거래중개업 인가를 마련해 장외유통 플랫폼을 신설한다. 이때 자기자본, 물적, 인적, 대주주, 임원 요건이 존재한다. 또한 거래 종목 진입, 퇴출, 투자자 정보제공, 불량회원 제재, 이상거래 적출 등과 관련한 업무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권 중개 전문회사 요건 등을 감안해 증권 유형별로 인가 요건을 정할 것"이라며 "필요 시 보안요건을 추가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발행 업무에 관여한 자산은 유통할 수 없다.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발행과 유통 업무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발행은 물론 인수, 주선에 관여한 토큰 증권의 유통이나 자기계약을 금지한다.
장외시장에 적용되는 공시 규제는 완화해 적용한다. 발행 시 증권신고서나 소액공모 공시서류를 제출했다면 매출 공시 예외를 인정하는 식이다. 통상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이미 발행된 증권의 매도나 매수 청약을 권유할 때마다 증권신고서 등을 제출해야 하지만, 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거래량이 높은 토큰 증권은 사모가 아닌 공모 발행으로 간주해 규제 회피 시도를 방지한다.
당국은 대신 공시 예외를 적용하는 소규모 유통시장임을 감안해 투자 상한선을 마련할 방침이다. 도산절연, 비정형성 측면에서 투자 위험을 따져 각 토큰 증권의 한도를 정한다.
다수 투자자가 거래하거나 거래량이 큰 경우엔 한국거래소의 디지털증권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이때는 분산원장기술이 아닌 전자증권으로 취급하며 주식 거래에서 사용되는 매매‧청산‧결제 인프라가 활용된다. 상장요건과 공시 의무에 대한 기준은 기존보다 완화한다.
금융위는 토큰 증권의 발행·유통체계를 제도화하기 위해 법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상반기 중 국회에 전자증권법,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그 전에는 혁신성이 인정될 경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테스트 과정을 진행한다. 이밖에 하위법령 개정만 필요한 세부요건은 향후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