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장기간 무차입 공매도를 고의적으로 저지른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 HSBC와 국내 수탁증권사에 과징금 265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불법공매도에 대해 과징금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된 이후 최대 규모다. 당국은 또 BNP파리바, HSBC 두 곳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는데 무차입 공매도로 이같은 조치를 받은 것도 처음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지난 22일 임시회의를 열고, 글로벌 IB 2개사의 장기간에 걸친 무차입 공매도 주문·수탁과 관련, 자본시장법상 공매도 제한 위반으로 판단하고 검찰 고발과 총 265억2000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증선위에 따르면 BNP파리바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9개월 간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회사는 보유 수량 보다 많은 규모로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며 공매도 제한을 위반했다. 예를 들어 100주를 가지고 있던 A부서가 타부서에 주식을 50주 대여했다. 그러나 대여 내역을 입력하지 않아 A부서의 보유량은 여전히 100주로 인식했다. 결과적으로 BNP파리바는 보유수량을 150주로 잘못 기재한 후 150주에 대해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고, 50주에 대해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졌다.
회사는 매매일(T)+1일에 주식을 빌려오거나, 이미 빌려준 주식을 상환받아 결제부족 수량을 채워넣어 T+2일에 정상 주문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증선위는 "매도가능 수량 부족을 인지하면서도 외부 사후차입과 결제를 지속해 향후 무차입 공매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인식 또는 예견할 수 있었다"며 "이를 방관한 채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고 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주문을 수탁받은 증권사도 무차입공매도에 동조했다고 봤다. 공매도 포지션과 대차내역을 매일 공유받고 결제가능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잔고부족이 지속 발생했음에도 원인파악 및 예방조치에 나서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홍콩HSBC는 2021년 8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4개월 동안 9개 주식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실제로 주식을 빌리지 않고 차입가능 물량만 확인한 채 한국거래소에 헤지 주문을 넣는 패턴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주문이 체결된 만큼 외부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오는 방식이다.
증선위는 "매도 업무처리 프로세스 및 전산시스템이 국내 공매도 규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변경하지 않은 채 공매도 후 사후 차입하는 행위를 상당기간 지속한 만큼 위법행위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증선위는 BNP파리바와 HSBC, 국내증권사 등 3곳에 총 265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BNP파리바와 HSBC에 대해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무차입 공매도로 검찰에 고발된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은 각 회사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각 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불법공매도가 과징금 대상이 된 이후 각 사에 부과된 액수가 역대 1~3위"라고 말했다. 앞서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건 ESK자산운용 사례(38억7400만원 부과)였다.
원래는 공매도 제한 위반시 과태료 부과만 가능했지만, 지난 2021년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처벌이 강화돼 과징금 부과도 가능해졌다. 자본시장법 429조에 따르면 불법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거나 주문을 위탁한 회사는 주문액의 최대 100% 수준의 과징금을 내야한다. 수탁사는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처벌받는다. 다만 회피한 손실액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5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손실액의 1.5배에 상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국내외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관련 내부통제 시스템 정비·강화, 임직원 교육 등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금융위는 "불법 공매도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차입 공매도 방지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유관기관은 공매도 금지기간 중 지난 11월 16일 발표한 공매도 제도개선 방향을 토대로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