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의견이 나왔다.
아울러 사전지정제도(디폴트옵션)를 활성화 하기 위해선 투자성향에 따라 한 가지의 상품만 제시될 필요가 있으며, 원리금보장상품은 제외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호주처럼 기금형 도입 필요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노후소득 증대를 위한 연금자산의 운용 개선'을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계약형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가 개별적으로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회사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반면 기금형은 여러 사용자를 통합해 전문수탁기관에 맡기는 식이다. 정치권에선 지난 2014년부터 논의가 이뤄졌지만 번번히 입법 문턱을 넘지못했다.
그러나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기금형으로 운영하는 안이 힘을 받고 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법안의 입법을 준비 중이며, 고용노동부는 자문단을 꾸리고 논의를 진행중이다.
기금형 도입을 주장하는 가장 큰 배경은 2%대에 머무는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432조원으로, 2023년 말 10년 평균 장기수익률은 2.07%를 기록했다. 상품 유형별로보면 원리금보장상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2018년 3.07%에서 2.01%로 하락했으며, 실적배당형 역시 같은기간 4.8%에서 2.75%로 떨어졌다.
기금형은 △집합운용 확정기여형(DC) △조건부확정급여형(CDC) △독립형확정기여형(IDC) 등으로 나뉜다. 우선 집합운용 DC는 파편화된 DC자금을 하나의 풀에 모아 운용하는 방식이다. 개별 근로자의 가입, 탈퇴시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운용하는 '푸른씨앗'이 대표적인 사례다.
CDC 방식은 집합운용 DC형과 달리 수익자가 받아가는 급여가 어느정도 정해진다. 가입자들에게 종신연금 형태로 연금이 지급된다. IDC형은 수탁법인이 관리, 운용하며 개인에게 상품 옵션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퇴직연금제도와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이 대표적인 예다.
남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집합운용DC는 특수한 유형을 제외하고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IDC 형태가 수탁법인이 책임을 지고 양질의 상품을 제공해 근로자가 선택하도록 하고, 선택이 어려운 근로자를 위해 정상적인 형태의 디폴트옵션 상품을 제공하는 방식이기에 도입시 무리가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확정급여형(DB)에는 기금형 운용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시각이다. 각 회사마다 적립금 규모가 각기 다른 탓에 제도 운용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기업들의 적립금 운용위원회 구성 및 적립금운용계획서(IPS) 의무화 등 현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남 연구위원은 "10개의 기업이 기금형으로 운용을 한다면 어떤 기업은 110%를 적립하고 어떤 기업은 90%만 적립한다"며 "기업마다 포트폴리오는 ALM(자산부채 종합관리) 차원에서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B형은 실질적으로적립금 운용위원회가 활동을 하면 그 자체가 기금형과 유사한 모양을 띨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국민연금의 퇴직연금의 기금을 운용하는 데는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공단에 100인 초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게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있다.
남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수익률이 8%이고 퇴직연금 수익률이 2%여서 퇴직연금 430조원을 국민연금에 맡기면 8% 수익이 나올 것이란 단순한 논리"라며 "자산운용이 그렇게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제도단일화의 주요대상을 30인 미만에서 50인 미만으로 확대하고 국민연금공단을 포함한 근로복지공단 등 여러 공공기관이 시장내에서 경쟁하도록 해야한다"고 제시했다."옵션 너무 많은 디폴트옵션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한편, 수익률 개선을 위해 디폴트옵션을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혹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방법을 지시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남 연구위원은 "계약형 기금 구조에서 갖는 제도적 제약으로 이상한 모양의 디폴트옵션이 도입됐다"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선택을 못하는 사람한테 선택을 하게 만드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자위험 성향에 따라 하나의 상품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각 투자위험에 따라 2~3개의 상품을 제시하고 있다. 남 연구위원은 "근로자가 잘못 선택해 수익률이 나쁘다고 회피할 수 없도록 퇴직연금 사업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한개의 상품만 제시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디폴트옵션에선 원리금 보장상품은 배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은행 예금 등 원리금 보장상품으로만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를 100%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남 연구위원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100% 구성하는 상품은 금지하고 적격상품으로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패널토론에서도 기금운용 도입과 디폴트옵션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박희진 부산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은퇴자가 연금을 찾아갈때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못해 노후가 위험한 상황들이 생기면서 영국이나 호주에서 수탁자에게 지급단계에 제대로 된 상품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수탁자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여은정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금형 전환과 디폴트옵션의 혁신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회전체적으로 바람직한 기금형 사업자 선정방안을 도출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퇴직연금에서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비중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희진 교수는 "ETF는 본질적으로 단기거래 효율성, 유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상품이라 장기투자엔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나온 연구보고서에선 테마형 ETF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가입자가 ETF를 빈번하게 거래해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며 "ETF를 퇴직연금상품으로 인정하는 것이 맞는지, 인정하더라도 어느정도 투자 범위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