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죠? 우리 집에서 안테나가 2개 밖에 안잡혀요. 빨리 설치해주세요"
"아니, 옆 동네 아파트는 옥상에 설치하던데 왜 우리는 도로 위에다 설치하는 거죠?"
"옥상에 설치하면 그 많은 전자파 고층 주민이 다 받는데 말도 안되죠"
"옥상이든 도로 위든 왜 하필 우리 동이냐고요, 205동에 설치해요 그냥"
대체 무엇을 설치하기에 이렇게 설전을 벌이느냐 궁금하실 텐데요. 바로 이동통신 기지국 입니다. 지난해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69조2항을 신설해 500세대 이상 대규모 주택단지에 기지국 설치 의무화를 규정했습니다.
때문에 어디에 기지국을 설치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내 땅에는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처럼 기지국을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지국에서 전자파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전자파는 해롭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기지국 설치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근에 기지국이 없어 통신 음영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내 집 근처에 기지국 설치를 거부하는 사람과 원활한 통신을 위해 기지국을 설치하려는 사람간 갈등을 빚는 것입니다.
기지국 설치로 인한 갈등은 정부와 지역의회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11월 교육부 및 미래부 장관 명의로 경기도의회의 전자파취약계층 보호조례 무효확인 소송을 대법원에 냈습니다.
경기도의회가 만든 전자파취약계층 보호조례는 교육감이 도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전자파 안심 지대로 지정해 이동통신 기지국 설치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전자파로부터 인체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은 미래부 장관의 고유 권한임을 강조하며 무효소송을 낸 겁니다.
이 같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부는 지난 9일 '공동 주택 전자파 갈등 예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가이드라인에는 대규모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환경 친화적 기지국 설치, 분양 전 기지국 설치장소 공개, 전자파 안전성 종합 진단 등을 담았습니다.
또 입주후에도 민원제기시 전자파 측정결과를 상세히 공개·설명토록 했습니다. 오는 9월부터는 지면에서 1.8m 이하에 기지국을 설치하는 경우 접근제한 가림막 설치도 의무화 됩니다.
미래부는 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에 의뢰해 지난달부터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 대한 전자파 안전성 평가에 나섰습니다. 표본조사 방식을 도입해 지난해에는 100여 곳을 조사하다가 올해 300여 곳으로 늘렸습니다.
KCA는 올 연말까지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 어린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에서 기지국, 와이파이(Wi-Fi) 등에 대한 전자파 강도를 측정합니다.
측정된 전자파 결과는 전자파 등급제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합니다. 전자파 측정을 통해 안전성을 관리하겠다는 정책은 좋아 보입니다.
또 미래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동통신이 생활 필수제가 되고 대규모 아파트의 재난상황에서 신속한 구조 활동을 위해서라도 이동통신 이용보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신이용 환경이 확대되는 만큼 기지국 설치는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가이드라인 발표는 전자파로 인한 문제를 아예 없애는 방향이 아닌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전자파 갈등 논란을 해결하려는 모양새인 셈이죠.
지난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전자파에 대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2B등급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IARC는 "매일 30분 이상 장기간(10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람의 뇌종양 및 청신경증(암의 일종으로 귀에 발생) 발생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40%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독성프로그램(NTP)은 "휴대전화 전자파에 노출된 수컷 쥐에게서 뇌종양과 심장종양이 발견됐다"는 예비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는 지난 2012년 '전자파 인체영향 보고서'를 통해 성인의 경우 전자파 노출에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어린이에게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각종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전자파를 주의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5G(5세대 이동통신)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지국을 세우는 등 전자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안 쓸 수도 없고, 기지국을 설치하자니 위험성이 우려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전자파가 얄밉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