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이세정 기자] "선전에서 한국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상당히 자리 잡은 회사가 아니라면 중국에서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정준규 코트라 선전무역관장)
연 5~6%대 중속 성장을 하는 중국 시장은 매력적이지만 발 들이기 쉽지 않다. 중국기업의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높은 만큼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고배를 마실 수 있다. 값비싼 현지 사무실 임대료도 진입장벽 중 하나다.
선전 엑셀러레이터를 잘 활용하면 중국 진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증강현실 글래스 회사인 더알파랩스, 자가체혈 의료 진단기 회사인 BBB 등 한국 스타트업은 선전 소재 글로벌 엑셀러레이터인 핵스의 지원을 받아 판로를 개척했다.
현지에서 만난 엑셀러레이터 테크코드와 대공방도 한국 스타트업에 긍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물론 깐깐한 입주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 고시원 임대료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사무공간을 내주는 건 호의가 아니다. 충분한 투자수익을 돌려줄 만한 기술력과 사업성을 증명해야 한다.
▲ 선전 테크코드 로비에 전시된 스타트업 제품들 [사진=이세정 기자] |
◇ 90년생 창업가부터 화웨이 부사장까지
테크코드는 산업도시 개발기업인 화샤싱푸 산하 엑셀러레이터로 2015년 설립됐다. 7개 국가 25개 도시에 총 31개 오피스를 둔 대형 엑셀러레이터다. 이제까지 육성한 스타트업만 약 2000개로 이중 매출액 1억달러(약 1079억원) 이상 회사는 100여개에 이른다.
지난 6일 방문한 선전 테크코드는 입구에서부터 스타트업 제품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락용인 줄 알고 집어 든 한 VR기기는 법원 재판 중개용 기기였다. 현장에 있는 것처럼 재판을 생생히 전달해 지식 재산권 전담 법원 등 IT업계 종사자가 자주 찾는 곳에서 쓴다고 한다.
창업가도 각양각색이다. 선전 테크코드 육성기업인 제1반응은 창업가 전원이 90년대생이다. 구급상자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텐센트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에 앱을 탑재시켰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전직 화웨이 부사장도 이곳에 몸 담고 있다. 중소기업의 영수증을 처리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테크코드는 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청년이든 대기업 임원이든 구별 없이 사무공간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장빙 선전 테크코드 부사장은 "기술력, 직원의 자질, 테크코드 자원과의 연관성 등을 따져 입주기업을 선정한다"면서 "업체 종류에 따라 심사위원을 다르게 구성하지만 수익성 체크를 위해 펀드 담당자는 반드시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장 부사장은 "과거 경험에 따르면 한국 스타트업은 철저한 준비성이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선전 테크코드는 한국 연예인과 중국 팬의 소통 플랫폼을 운영하는 한국 스타트업을 한 차례 입주시킨 적 있다. 다만 이 기업은 직원들의 비자 문제가 생겨 철수해야만 했다.
그는 이어 "테크코드는 기본적으로 해외 스타트업에도 열려 있다"며 "중국 시장에서 포화 상태인 스마트 하드웨어 업체는 받아주기 어렵지만 피부 테스터 기기 등 미용, 애니메이션 분야 기업은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띵춘파 대공방 대표 [사진=이세정 기자] |
◇ "삶의 질 개선하는 한국기업 환영"
대공방은 중소기업 비즈니스 지원회사인 따디엔에서 세운 엑셀러레이터로 2013년 출범했다. 따디엔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샘플링, 테스트, 제조 등 사업의 전 과정에 필요한 설비를 운영한다. 대공방은 스타트업을 선정해 따디엔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난 7일 찾은 대공방은 하나의 산업단지를 연상시켰다. 대공방 건물 1층엔 공장이, 2층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품 기획부터 제조까지 한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띵춘파 대공방 대표는 "설비, 납기 등 원하는 조건에 맞는 생산업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공방 인프라 활용이 이익"이라며 "특히 대공방의 창업 원가는 서울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대공방은 한국 스타트업도 지원하고 있다. 영화감독 출신인 한국인 창업가는 촬영설비를 다루다 기술에 관심이 생겨 창업에 뛰어들었다. 대공방은 그의 헬스용 자전거 사업을 돕고 있다.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도 쓸 수 있다는 점이 대공방의 눈길을 끌었다.
유아용 공기청정기 스타트업도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마친 후 이곳에 입주했다. 최근 선전 전시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샘플 생산을 마쳤으며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추천한 15개 스타트업 중에서 선발됐다. 인지도는 낮지만 중국 내 삶의 질 개선을 추구하는 기조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띵 대표는 "중국의 중산층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신감을 높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창업 시장은 붐을 거쳐 이성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라며 "카피캣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제품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과 러시아 연합기업이 개발한 스마트워치 헐드커프는 대공방의 대표적 히트상품이다. 2014년 헬스케어에 쏠린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노인 유실 방지용 시장을 포착해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띵 대표는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사장되기 쉽지만 틈새시장을 노리면 성공할 수 있다"며 "삼성, 화웨이가 놓친 시장을 발굴하는 스타트업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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