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사업을 진행하는 벤처, 도쿄에서 철수하려는 일본 츠케멘 장인 라멘집.
이해진(53) 네이버 창업자의 개인회사 '지음'의 투자 이력이다. 벤처 투자야 인터넷기업 네이버의 태생 자체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이니 그러려니해도 라면집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또 다른 '라인(LINE) 메신저' 성공 신화를 쓰기 위해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IT 거물이 첨단 테크 분야와 거리가 먼 음식점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려워서다.
이 창업자가 2011년 11월에 설립한 100% 개인회사 지음은 일본과 싱가포르에 각각 '베포 코퍼레이션'과 'J2R 인터내셔널'이란 해외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도쿄 시부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베포는 독특하게도 라면 사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가 돈을 대고 다른 현지 기업들과 공동으로 라면집을 경영하고 있다.
베포의 모기업이자 경영컨설팅 업체 지음이 사업 목적 가운데 하나로 '숙박 및 음식점업'을 내걸고 있고, 그에 걸맞게 매니아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본의 라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니 독특한 사업 아이템이긴 하나 아예 수긍을 못할 것도 없다.
더구나 베포의 사업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이 창업자와 함께 네이버를 설립한 초기 멤버이자 네이버 내에서 '일본통'으로 꼽히는 김양도(54) 씨라는 점까지 확인하면 어느덧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양도 베포 대표이사는 이 창업자가 1999년 6월 네이버컴을 세울 때 참여한 설립 멤버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에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와 도쿄대 대학원에서 사회정보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네이버에 입사한 이후 일본법인 네이버재팬과 NHST(네이버의 일본 검색사업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중국 다롄에 설립한 NHN재팬의 자회사), 라인 후쿠오카(라인의 고객 지원 자회사) 등 주로 일본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2017년에 라인 후쿠오카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을 계기로 18여 년간 몸담았던 네이버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이후 그의 거취에 대해 알려진 게 없었는데 이 창업자의 개인회사로 넘어와 자신의 홈그라운드라 할 일본에서 투자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포의 지난해 매출은 1억엔 수준이며 매년 영업 손실로 적자가 이어지고 있어 실적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작년 말 기준 총자산이 79억엔(우리돈 882억원)으로, 버는 것에 비해 제법 덩치를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창업자가 베포를 키우기 위해 금전적으로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이 창업자는 2018년 지음의 7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회사의 곳간을 넉넉히 채웠는데 이 자금이 그대로 해외 계열사인 베포에 출자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이 창업자는 네이버의 보유 주식 일부를 팔아 현금화하면서 기존 4.64%에 달했던 지분율이 지금의 3.72%로 줄었다. 그가 네이버 보유 지분에 손을 댄 것은 2009년 이후 무려 8년 만에 처음일 만큼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네이버 측은 "개인 차원의 지분 매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네이버 신화의 주인공 이 창업자가 하필이면 라면 사업에 꽂힌 이유는 뭘까. 김양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따라 그 구체적인 밑그림이 드러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