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커다란 파급력을 가질 때 쓰이는 표현이지요.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장난에서 시작된 '밈(meme) 코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밈 코인의 대표주자는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시바견 사진을 이용한 도지코인(DOGE)입니다. 가상자산 시장을 비꼬기 위해 탄생한 코인이지만, 별 이유도 없이 수백배, 수천배 급등하는 투자 광풍의 주인공이 됐지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스페이스X의 우주탐사에 활용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개구리 코인, '페페(Pepe) 코인'도 밈 코인입니다. 맷 퓨리 작가의 만화 '보이스클럽'에서 등장한 개구리 캐릭터 페페(Pepe the frog)를 활용했지요. 웃지도 울지도 않는 오묘한 표정으로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쓰여 온 캐릭터입니다.
백서에 따르면 페페코인은 공식적인 팀도, 로드맵도 없습니다. 아무런 쓸모 없이 오락 목적으로 사용되는 밈 코인입니다. 굳이 소개글을 요약하자면 "개들의 전성기는 갔다, 세상에서 제일 잘 알려진 밈인 페페가 밈의 왕으로 군림할 것" 정도입니다.
장난처럼 시작된 페페코인의 상승률은 놀라웠습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페페코인은 지난달 17일 0.000074원에서 지난 6일 0.005614원으로 7486% 올랐습니다. 불과 보름만에 70배가 넘게 상승한 셈이죠.
페페코인의 상승에 불을 붙인 것은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입니다. 기존에도 유니스왑, 게이트아이오, 쿠코인 등에서 거래량 상위권을 차지했던 페페코인이지만, 바이낸스에 지난 5일 상장한 직후 그야말로 수직상승했습니다.
페페코인이 촉발한 밈 코인 인기는 '디지털 금'이라고까지 불리는 비트코인의 출금 중단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면 'BRC-20', 그보다 앞서 '오디널스 프로토콜'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파악해야 합니다.
'오디널스 프로토콜'은 비트코인의 최소 거래 단위인 '1사토시(0.00000001BTC)'에 이미지, 텍스트 등 콘텐츠를 첨부하도록 한 기술입니다. BRC-20은 익명의 개발자 도모가 이 오디널스 프로토콜을 활용해 내놓은 표준 토큰이고요. 페페코인은 이 BRC-20 토큰을 기반으로 발행됐습니다.
코인의 인기가 높아지고 거래가 활발해지면 트랜잭션(데이터 작업)이 증가합니다. 페페코인뿐만 아니라 다른 BRC-20 토큰을 기반으로 한 밈 코인의 거래량이 일제히 급증하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혼잡으로 이어졌습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래 수수료 또한 폭발적으로 상승했죠. 소셜 미디어 '알파임팩트' 최고경영자인 헤이든 휴즈는 "오디널스 프로토콜이 네트워크 수수료와 혼잡도 증가로 이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혼잡도 상승은 출금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지난 7일(현지시간) 네트워크 혼잡을 이유로 비트코인 출금을 두 차례 일시적으로 중단했다가 재개했습니다.
바이낸스의 출금 중단은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을 촉발했습니다. 비트코인은 10일 오후 4시 기준으로 365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3900만원선까지 회복하며 4000만원선을 넘봤던 것과 비교하면 약 6%는 떨어진 셈입니다. 페페코인 또한 고점 대비 '반토막'난 0.002600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페페코인이 도지코인의 아성을 넘어서게 될지, 아니면 다수의 밈 코인이 그러했듯 사라져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 어디까지나 재미로 만들어진, 쓸모 없는 밈 코인은 다른 가상자산보다 가격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고, 투자자들도 신중해야만 합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는 "밈코인(과 모든 가상화폐)은 위험도가 높고 아무도 매수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