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객자금 출금을 중단하고 사무실까지 폐쇄해 ‘먹튀’ 논란에 휩싸인 가상자산 운용사들이 여전히 운용 규모와 고객 예치금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투자금 보전 여부와 피해 규모도 모르는 고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집단소송에 나섰지만, 해당업체와 당국은 어떠한 대책과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마친 델리오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고객예치금과 회사 보유 가상자산 수량 등 구체적인 실사자료를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다.
정부 인가를 받은 가상자산거래소 등 대부분 사업자들은 외부 회계법인의 실사를 통해 고객예치금, 회사 보유량 등을 감사보고서와 자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지만, 총 운용규모가 조단위로 알려진 가상자산운용사인 델리오의 실제 보유수량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국내 예치 업체 중에는 오히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은 헤이비트와 샌드뱅크가 실사보고서를 통해 운용규모를 투자자에게 공개하고 있다.
델리오는 홈페이지에 총누적거래금액(TVU)을 공개하고 있지만, 이는 누적 개념으로 실제 운용 중인 자산과 괴리가 크다. 이날 기준 델리오의 TVU는 비트코인(BTC) 4만1751개, 이더리움(ETH) 11만여개 등으로 원화 환산시 1조 6600억원이 넘는다.
정확한 운용규모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정상호 델리오 대표는 외부 공개 의무가 없다며 FIU에는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 대표는 “분기마다 운용규모나 고객자금에 대해 FIU에 현황을 보고하고 실태조사를 받고 있다”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가상자산 운용사이기 때문이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회계감사가 예정돼 있어 앞으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상자산사업자 고객예치금 공개 '의무 아닌 권고사항'
운용사에 자금을 맡긴 고객이 실제 운용규모와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되는 것은 현재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예치금 등 공개가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의 감시가 원화 거래소에만 집중돼 있어 예치 운용사, 지갑업체 등 다른 사업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소홀하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는 외감법인의 실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홈페이지에 공지하지만 FIU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 한 보고할 의무는 없다”며 “권고사항으로 분기마다 1번씩 공개하라고 하지만 안 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감독당국이 자료를 내라면 내지만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의무가 없다”며 “사실상 당국 감독과 관련 규제들이 원화를 다루는 대형거래소에만 집중돼 있어 다른 사업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감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델리오의 재무상황도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2021년도 말 기준 총 자산은 70억원 정도로 파악된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델리오는 2021년 자본금 5억8000여만원, 매출액 108억원, 당기순이익은 56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과 2019년에는 당기순이익이 각각 10억원, 5억원 손실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