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알뜰폰(MVNO)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오히려 이용자 편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국회에서 보류되고 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알뜰폰 도매제공 의무제도 관련 사전 규제를 대안으로 갑자기 제시하면서 이동통신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2010년부터 3년 일몰과 연장을 반복한 끝에 사후 규제로 전환을 앞뒀는데, 업계 의견 수렴이나 국회 차원의 숙의 없이 14년 전 규제로 갑자기 돌아가고 있어서다.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정보통신방송소위원회에선 대기업 또는 계열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을 60%로 제한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했으나 방향성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은 대기업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 확대로 인한 공정경쟁 저해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중소 알뜰폰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발의로 마련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제도가 경쟁 감소를 유발해 이용자 편익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알뜰폰이 대형화해야 기존 이동통신3사와의 실질적 경쟁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상당 부분 인정하는 바다.
이런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도매제공 의무제도에 사전 규제를 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에 3년 일몰 조건으로 도입된 도매제공 의무제는 이동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사업자에게 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망을 직접 구축하지 않고 이통사에 도매대가를 내면서 망을 임대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도매제공 의무제는 3차례 일몰과 연장이 반복된 끝에 2022년 일몰됐다. 그러나 지난해 이를 상설화하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내년부터는 사후 규제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기존에는 정부가 알뜰폰 사업자를 대신해 이통사와 도매대가 협상을 했으나, 사후 규제 도입이 되면 알뜰폰 사업자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 사후에 공정 경쟁이 저하됐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원점으로 복구해 대리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에서 이동통신시장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방안들이 충분한 숙의 없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점유율 제한 규제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면 법안 자체에 대한 합리성 검토와 함께 수정안이 제시돼야 할텐데, 대안으로 예전 규제가 엉뚱하게 등장해버렸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설화와 사후 규제로 전환하기까지 많은 논의를 거친 까닭에 불만이 있더라도 수긍은 할 수 있는데,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의견 수렴도 없이 갑자기 이전 제도가 부활하면 내용도 그렇지만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며 "그렇지 않아도 사업자에 불리한 상황인데, 사전규제까지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도매제공 의무제도라는 규제의 정책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한 만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이정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중소 독립계 알뜰폰 사업자들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1000억원에 달한다"며 "이는 정부가 2016년에 규제영향분석서에서 제시한 규제의 도입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6년 과기정통부가 작성한 규제영향분석서는 "향후 3년간 도매제공 의무제도를 연장해 알뜰폰 사업의 안정화를 지원하고,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비 경감정책의 주역으로 자리 잡도록 지원한다"고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