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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구조조정만이 답이다

  • 2013.10.07(월) 14:59

지금 조달 다양화•독자 신용등급 미루면 안 돼
기업 체질 개선이 선의 피해 막고 경제에 도움

웅진, STX에 이어 동양그룹 사태로 금융시장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기업들이 시장에서 조달하는 돈의 금리가 너무 많이 뛰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그러나 재계 순위 30위권의 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만큼 어느 정도 변동성은 예상할 수 있고 불가피하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모호하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시장성 조달자금을 신용공여에 포함하는 문제를 검토한다거나, 독자신용등급 신용평가 문제를 더 미루는 것은 금융시장에 좋은 사인(sign)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현재의 불을 끄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금리변동 수준이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만한 재료인지는 의문이다. 동양그룹이 은행의 간섭을 피하려고 시장성 자금 조달에 치중했다고 해서 시장성 자금을 신용공여 범위에 포함하겠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발상이다.

금융시스템이 은행으로만 집중한다면 금융시장의 자율적인 정화는 사라지고, 금융당국의 인위적인 정책이 시장에 투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양그룹이 시장성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법을 위반하거나 정당치 못한 방법을 쓴 것은 분명히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다양한 조달창구를 사실상 한 곳으로 모은다면, 그것은 금융시스템을 과거로 되돌리는 결과다.

창의적인 벤처기업이 탄생하기 위해선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곱씹어봐야 한다. 기업도 보통 생애주기 별로 다른 쓰임의 돈이 필요하다. 은행 돈이 필요할 때도 있고, 시장성 자금이 필요할 때도 있다. 벤처캐피털처럼 기술력 하나만 보고 10년씩 자금을 공급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자금 조달의 다양성이 결국 기업의 생태계를 살찌우는 것이다. 동양그룹이 시장성 자금 조달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이미 그룹의 사업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고, 그로 인해 시장성 자금을 늘린 것이다. 엄연히 인과 관계가 다른 문제를 마치 은행의 간섭을 받지 않아 문제가 된 것처럼 얘기한다면, 은행과 공무원은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떠드는 것과 같다.

신용평가시장에서 독자 신용등급을 매기는 제도가 계속 미뤄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한차례 미룬 이 제도를 또 미루려는 것은 당장 개별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독자 신용등급을 도입하면 많은 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내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룹의 울타리에 숨어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사주에게 시간만 벌어주는 것이 맞는다고 볼 수도 없다. 그 결과는 이번 동양그룹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동양그룹의 계열사들이 독자 신용등급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다수의 불특정 증권사 고객을 사지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를 미루면 미룰수록 불특정 금융 고객은 그룹이 숨기는 부실 속에서 폭탄 돌리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정보에 취약한 서민들만이 피해를 봐야 한다면 이보다 불합리한 정책은 없다. 금융시장에서 웅진, STX, 동양 모두 수년 전부터 쉬쉬하던 기업들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독자 신용등급 도입도 이런 문제를 줄여 보자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고 선의의 고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더 늦춘다면 그룹들의 부실 은폐에 따른 충격을 계속해서 서민들이 떠안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 구조조정은 힘들고 욕먹는 짓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등 금융 당국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럴수록 초심과 기본으로 돌아가는 정공법만이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점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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