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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을 위한 변명?

  • 2014.01.27(월) 10:29

오늘날 커지고 있는 코리아 리스크(korea risk) 내지 한국경제 불확실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경제 양극화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근시안적 통화관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볼 때, 고성장·고물가 상황에서는 저금리를 고집하고, 저성장·저물가 환경에서는 거꾸로 고금리에 집착한 결과 그 부작용과 후유증이 장기간 누적되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상황에 비하여 턱없이 낮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빚을 많이 질수록 수지맞는 환경이 조성된다. 소위 관치금융시대 즉 금융억압 상황에서는 정경유착을 통하여 저리로 큰돈을 대출 받으면 가만히 있어도 큰돈을 벌 수 있어 한국경제 양극화 현상의 시발점으로 작용하였다. 당시 일반 가계는 강한 신분상승의지로 열심히 저축하여도 실질금리(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값)는 마이너스에 가깝거나 경제성장률에는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저축이 재산형성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여기저기 불로소득을 찾아 두리번거리야 돈을 모을 수 있고 경제적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금리자유화 이후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계속되었지만 돈이 산업자금으로 흐르기보다 투기자금으로 흘러들어,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주식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투기 열풍이 스치고 지나가면 예외 없이 빈부격차가 심화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와 같은 저금리 정책의 배경에는 성장제일주의 아래 생산요소인 자본의 가격 즉 금리를 낮게 유지하여야 한다는 구호가 깔려있었다.

반면에 지금과 같은 저성장 저물가 시대에 (경제상황에 비하여 높은)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 현금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을 더 비대하게 하는 반면에 이리저리 빚진 사람들을 더욱 허덕이게 하는 안타까운 광경이 보이고 있다. 사실이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성장률에 대한 실질금리 수준은 역사상 최고 수준에 있다.
 
저성장 저물가 상황에서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실질금리는, 경쟁 대상국들이 대부분 마이너스임을 생각해 볼 때, 보통 높은 수준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하면 가계부채가 GDP수준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고금리는 가계의 부담을 더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소비수요 부족 현상이 만성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때 아닌 물가타령은 부자들을 위한 변명이 아니고 무엇인지 모르겠다.

▲ 우리나라 실질금리 추이<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단, 실질금리는 분기별 회사채(aa-) 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수치>

혈압이 높거나 낮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건강에 치명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료인들은 소리 없이 진행되는 고혈압과 저혈압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의 혈압과 같은 금리가, 경제상황을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높거나 낮으면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고 그 후유증은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워진다.

기준 없이 행해지는 통화관리가 가져오는 비극적 상황의 예를 들어보자. 20세기 전반, 미 대륙에서는 디플레이션에 따른 통화가치 과대평가로 대공황이 촉발되어 일자리가 없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 통화가치의 끝없는 추락이 히틀러의 제3제국을 등장시키는 참극을 초래하였음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기서 주요 국가에서 중앙은행 최고책임자를 경제대통령이라고까지 지칭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힘이 세면 힘이 셀수록 사회에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힘자랑만 하다가 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거나 사적이해(private interest)에 빠지게 되면 그만큼 더 국가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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