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우스갯소리로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하면 집을 못 찾는다”는 말이 있다. 허구한 날 한밤중에 들어가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 야근에, 약속에 치여 사는 직장인들이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날은 주중에 고작 1~2번이다.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오니 아이들에겐 옆집 아저씨만도 못한 아빠들이 된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의 기준은 첫째도 직장, 둘째도 직장이다.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이 직장 중심으로 굳어진 것은 직장에 뼈를 묻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회사가 그런 사람을 원하니 직장인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이런 직장 문화에 학을 뗀다. “1주일에 60~80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진다”(삼성전자) “주말, 국경일을 포함해 매일 야근한다”(네이버) 미국 취업사이트 ‘글래스도어’의 한국 기업 평판 코너에는 밥 먹듯이 하는 야근과 술자리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한국 기업에 다니는 외국인 직원들은 ‘보상과 복지’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지만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부문은 평균 이하 점수를 준다. 개인의 삶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양 날개로 날아야하는데 한쪽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하는 한국의 직장 문화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고 신세대 직장인들이 들어오면서 직장 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야근을 줄이거나 없애야 삶의 한 축(가정생활)을 복원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CEO들도 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지난 1월부터 오후 6시 반이면 사무실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도를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대건설 호텔신라 한국야쿠르트 한미글로벌 등은 매주 또는 격주에 한번 ‘가정의 날’의 정해 조기 퇴근을 유도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주당 40시간만 채우면 하루 4시간 근무도 가능한 자율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개인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KT 등 일부 ICT기업은 스마트워크센터를 활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정부도 연초부터 ‘일과 삶의 행복한 균형-일가(家)양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회의시간을 줄이는 등 일과시간의 불필요한 부분만 줄여도 야근할 일이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하루 8시간30분의 업무시간 중에 ‘실제로 일하는 시간’과 ‘가치 있는 일에 활용하는 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가양득이 사회 전반으로 널리 퍼지려면 고용주인 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과도한 야근이 지속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증가해 업무 몰입도가 저하되고 쉽게 피로해져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 야근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되는 셈이다.
경영 컨설턴트인 에릭 알베르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더 열정적이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 회사로부터 더 많이 상처받고 빨리 그만두는데, 이는 재충전 없이 에너지와 인생을 고갈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가족과 함께 하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는 게 기업에게도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