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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국민연금과 재생에너지 투자

  • 2014.07.21(월) 17:56

노르웨이는 북유럽에 위치한 국토면적 36만5178㎢ (세계 61위), 인구 513만6700명 (세계 118위)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1271달러로 전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 독일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국처럼 글로벌 금융중심지도 아닌 노르웨이가 이렇게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르웨이가 북해, 석유(브렌트유)와 가스 자원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유럽대륙 사이에 위치한 얕은 바다인 북해 해안가에서 석유가 발견된 건 지난 18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북해 석유, 가스자원의 본격적인 개발은 1964년 영국 기업인 BP(British Petroleum)가 북해에 탐사선을 띄우고 굴착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영국은 이미 1958년부터 대륙붕 협약을 추진했고 1960년대 말에 북해를 둘러싼 국가들과 배타적 경제수역을 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진 영토를 가진 노르웨이는 영국 다음으로 넓은 해역의 배타적 이용권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배정받은 북해 바다에서 1970년초부터 전체 북해 에너지 자원의 절반을 넘는 막대한 양이 쏟아져 나왔다.

 

노르웨이 연안에서 채취된 석유는 2001년도에 하루 320만 배럴로 정점을 찍은 후 2013년에는 140만 배럴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가격은 2001년 배럴당 30달러 대에서 2013년에는 100달러 대로 치솟아 판매 수입은 피크 생산 때 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현재 노르웨이 전체 수출의 33%는 원유, 24%는 천연 가스가 차지한다.

 

애로점이 없지는 않았다. 북해는 바람이 많이 불고 기상이 변덕스러워 유전개발이 쉽지 않다. 특히 초기 유전개발 당시 많은 인명피해가 따랐다. 하지만 제대로 한번 터지면 대량의 자원이 쏟아져 나오는 자원개발 사업이 특성상 미국의 달 착륙 프로젝트 예산을 넘는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국영 기업인 스타토일(Statoil)은 막대한 수입을 국고로 가져왔고 노르웨이는 이 수입을 기반으로 국민연금을 조성했다.
 

▲ 노르웨이 국영 석유회사 스타토일(Statoil)의 본사.

 

주로 석유와 천연가스 판매수익금으로 조성된 노르웨이 국민연금의 규모는 840억달러(882조원)로 전세계 최대다. 지난 2013년 11월 기준 전세계 4위 규모인 대한민국 국민연금(423조5000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규모도 크지만 노르웨이 국민연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잘 운용되는 기금의 하나로 꼽힌다. 노르웨이 국민연금의 주식보유량은 전세계 주식의 1.2%에 달하고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세계 투자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런 노르웨이 국민연금이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현재 투자전략이 유효한지, 특히 자산의 10%를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자원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여전히 유용한 전략인지 검토하기 위해 올해초 전문가 그룹을 구성했을 때였다. 노르웨이는 지난 10년간 핵무기·인권유린 업체·담배 회사 등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회사도 투자 제외 대상에 들어갈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전문가 검토가 시작됐다는 뉴스가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올해 3월 13일,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임을 전격 선언했다.
 

▲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한 지적은 계속돼 왔다.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노르웨이 국민연금의 5%가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르웨이 기후변화 재단 관계자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분야에 5%를 투자한다는 조항이 신설되면 1년에 약 100억달러가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입된다. 이 관계자는 노르웨이가 재생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하버드 대학에서 화석 연료 투자 회수 운동을 펼치는 모습.


환경단체와 일부 투자가들은 '투자회수(divestment)'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가 파괴적인 기후변화의 원인이기 때문에 책임있는 투자기관은 관련 회사에 대한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2013년말 미국 시애틀 시를 포함한 몇 개 도시와 대학·교회 재단이 우선적으로 관련 회사 주식을 팔아버리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 국민연금이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화석연료 회사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매장량이 확인된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의 25% 이상을 사용하면 지구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식량 생산이 수십 년 내에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 연구 기관에서 발표됐다. 바꿔 말해 이같은 위험을 회피하려면, 이미 찾아놓은 자원도 75%이상 을 땅에 그대로 묻어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티은행, HSBC 은행 같은 금융기관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캐나다의 퀘벡주를 포함해 일부 연금기관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수익률이 대단히 높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나오고 석유나 천연가스와는 달리 기후변화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나라의 국민 연금이나 기관 투자가들은 이런 세계적인 동향을 반영해 운영되고 있는지, 아니면 과거의 가치에 기준을 두고 에너지 자원 개발에 투자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이라도 확인해 봐야 한다. 사회적인 비난을 받더라도 수익율 때문에 포기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익 자체가 안 나올 수 있는 게 화석연료 산업의 현실이다.

 

▲  비즈니스워치가 김지석 담당관의 '리스키 비즈니스'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지석 담당관은 미국 브라운 대학과 예일대 대학원에서 환경과 경제를 공부했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선임 기후변화에너지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고 최근 '기후불황'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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