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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뭄 속 깊어지는 캘퍼스의 선택

  • 2014.09.16(화) 12:11

국민연금이 안전한 채권 위주로만 운영되다 보니 수익율이 다른 대형연금에 비해 훨씬 낮은 4%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적인 기사가 얼마전 한 경제신문에 실렸다. 모범사례로 든 연금을 비교해 보니 최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결정한 노르웨이 연금이 15.9%로 1위였고 2위는 13.2%를 기록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였다.

▲ 캘리포니아 캘퍼스 본사 표지석 - 여기에서 150만명 이상의 공무원 연금이 관리 된다.

 

필자가 현대자동차에서 기후변화 관련 해외 동향보고 업무를 담당할 때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 포드자동차에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 대해 답변할 것을 요구하고, 포드 자동차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칼럼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해보니 포드 자동차가 적극적으로 캘퍼스의 요구에 대응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지난 1930년에 관련법이 통과되고 2년 후인 지난 1932년에 만들어진 공적 연금으로 지난해 3월 기준 자산 가치는 2606억달러(270조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시점 우리나라 국민연금 총자산 규모인 3861억달러(401조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다. 이 거대한 자산을 운용해서 수익을 내고 연금 가입자들에게 배분하기 위해 캘퍼스에 1만26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 캘퍼스 본사 전경. 캘퍼스는 늘어나는 직원을 수용하기 위해 지난 2005년도에 건물을 대폭 증축했다. 현재 26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기업지배구조, 기후변화 문제 해결 등에 대해 빈번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권 기관투자자(activist institution)’라고 잘 알려져 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80년대부터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가 지난 1990년대 초에 데일 핸슨(Dale Hanson)이 CEO를 맡으면서 그런 풍토가 굳어졌다.

 

예를 들어 캘퍼스는 지난 1992년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이던 제너럴 모터스의 이사회 의장인 로버트 스템펠(Robert Stempel)을 물러나게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캘퍼스는 또한 지난 1999년에는 당시 세상을 긴장 시켰던 ‘Y2K’버그 문제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되어 있는지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캘퍼스의 활동에 대해 연금 기관이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데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된 투자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 1998년도에 크러칠리(Crutchley)라는 연구자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 주주로서 경영 참여를 자제했던 기간인 1995~1997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1992~1994년 기간의 수익이 더 높게 나왔다.

 

추측컨데 매분기 수익을 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가는 기업이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을 찔러서 신경을 쓰도록 만든 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캘퍼스의 압박을 받았던 포드 자동차는 재규어, 랜드로버 등 대형차 브랜드를 매각하고 소형차와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을 강화해서 현재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2013년 말 '투자자산공개프로젝트(Asset Owners Disclosure Project)'를 통해 진행된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영국환경청연금(UK's Environment Agency Pension Fund), 호주 지방정부 수퍼펀드(Local Government Super fund)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평가항목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감안하고 있는지 등도 포함되어 있는데 캘퍼스는 이 부분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재미있는 건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의 구성원인 캘리포니아 지방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감안해 아예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 관련 투자금을 전면 철회하기로 속속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금 수익율과 규모면에서 모두 1위에 올라있는 노르웨이 국영연금은 이미 투자 철회를 검토한다고 발표한 반면 수익율 2위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아직 관련 회사의 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통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대형 기관들이 화석 연료 투자 철회에 나서기 시작하면 화석 에너지 자원 회사의 주가는 급속히 하락할 수 있다. 만약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 판단을 미루다 손실을 보게 되면 화석연료 투자 철회(fossil fuel divestment)를 요구하는 회원들의 질타는 대단할 것이다.
 

▲ 지난 1월에 있었던 캘리포니아 투자철회(divestment) 행사의 포스터, 투자 철회 운동은 점차 대중화 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설적’인 연금 운용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캘퍼스는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 2008년에 12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지난 2009년에는 무려 670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이때 1999~2007년 사이에 벌어들인 1240억달러의 절반 정도를 날린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2008년도에는 자산 규모가 1860억달러까지 떨어졌었고 1999~2009년 평균 수익율은 2.5%대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2570억달러 규모로 다시 회복하기는 했지만 주식 등 평가절하될 위험성이 있는 주식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규모를 유지하고 수익을 내려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잘 대비해야 할 것이다.
 

▲ 지난 9일자 캘리포니아 가뭄 상황 . 캘리포니아의 3분의 2 이상이 유례없는 가뭄(Exceptional Drought) 상황에 놓여있으며 인구 전체가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는 유례없는 가뭄을 겪고 있다. 그냥 주기적으로 오는 현상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심해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연금이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에너지 자원 회사에 투자해서 이익을 내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캘퍼스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석연료 관련 투자를 철회한다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이상의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다.


에너지 자원 회사 주식의 투매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발을 빼는 기관이 가장 손해를 덜 볼 것이다. 행여라도 우리나라 연금 기관이 해외 연금기관의 투매로 시장에 나온 에너지 자원 회사 주식을 사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이런 에너지 자원 회사의 주식은 자산으로 가치를 유지할 확률이 대단히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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