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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김장문화제' 주인은 누구?

  • 2014.11.14(금) 17:15

첫눈이 내린 14일 서울 광장에 모인 아줌마 1000여명이 칼바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빨간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불우이웃을 위해 14년째 김장을 담그고 있다.

11월 초겨울 날씨에 엄살떨 아줌마들은 아니었다. “김치는 추운 날 담아야 맛이 좋다”며 추위 속에서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기다림이었다. 행사는 오전 1시30분에 시작됐지만, 아줌마들은 2시20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유니폼 위에 앞치마를 두른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김장 김치를 나눠 먹고 있다.(사진= 이명근 기자)

행사에 앞서 VIP 인사말이 이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박래학 서울시의회의장,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에드문도 후지타 브라질 대사, 김혁수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의 축하인사가 이어졌다. 아줌마들은 인사말에 이어 'VIP 김장 담그기' 행사까지 지켜봤다.

더욱이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일찌감치 행사장에 도착해 김장을 준비했다. 12시30분부터 거의 2시간을 추위 속에서 서서 기다린 것이다. 14년째 이어온 행사지만 이번처럼 기다림이 길었던 적은 없었다.

올해 식전 행사가 길어졌던 이유는 김장 규모가 커져서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001년부터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14년간 김장에 쓴 배추만 135만포기에 이른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야쿠르트 아줌마 수천명이 김장을 담그는 모습은 따뜻한 반향을 불렀다. 대기업이나 단체들이 겨울철이면 한국야쿠르트를 벤치마킹해 김장 담그기 행사를 벌였다. 겨울철 불우이웃 돕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 대신 ‘서울 김장문화제’가 열렸다. 서울시가 그간 한국야쿠르트가 진행한 김장 행사의 판을 벌여 ‘서울 김장문화제’로 키운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행사를 단독 주최했다. 그간 행사 주최기관이었던 한국야쿠르트는 올해 ‘서울 김장문화제’에서 주관으로 빠졌다. 주최는 행사의 최종 권한을 갖는 사실상 행사의 주인이지만, 주관은 주최측의 의뢰를 받아 단순히 행사를 진행하는 곳일 뿐이다. 

김장나누기 행사가 김장문화제로 격상(?)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VIP들의 인사말이 늘었고, 사회자는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가며 행사를 진행했다. 2~3시간 안에 끝났던 김장나누기 행사는 문화제가 되면서 3일로 길어졌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 김장문화제를 세계 3대 축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말처럼 김장문화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국가적인 경사다. 한국야쿠르트 입장에서도 서울시의 행정력을 빌려 더욱 큰 행사로 키울 기회이다.

하지만 기업이 만들어낸 성공적인 행사에 서울시가 숟가락 하나 얹겠다는 자세는 안 된다. 14년 전통 ‘한국야쿠르트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순식간에 서울시가 주최하는 ‘제 1회 서울김장문화제’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었던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정치인들이 떠난 무대 위에 트로트 가수 박현빈 오르고서야 풀리기 시작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박현빈의 ‘샤방샤방’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배추에 양념을 버무렸다. 비록 그 모습은 ‘세계 3대 축제’는 아니었지만,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김장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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