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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의 재발견

  • 2015.06.05(금) 08:30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수제비는 세대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현대를 사는 젊은 도시인들에게 수제비는 입맛 없을 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반면 중장년층에게는 수제비가 추억의 음식이다.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정겨운 음식이다.

 

그렇지만 한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의미가 또 다르다. 된장찌개가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 안기고 싶은 그리움이라면 수제비는 마음 시리도록 그립지만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은 추억일 수 있다.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 때문이다. 

 

수제비는 한때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 겪었던 애증이 섞인 음식이지만 옛날 수제비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대충 만들어 먹었던 음식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잔칫상에도 올랐던 별미였고 고급 요리였다.

 

사실 근대 초기만 해도 양반집에서는 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밀가루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밀가루 대신에 쌀가루로 쌀 수제비를 끓여 잔칫상에 올렸다. 지금도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인들이 생존해 계시니 아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수제비라면 으레 밀가루 반죽으로 끓이는 것이라고 생각해 쌀 수제비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지만 예전에는 추수가 끝났으니 쌀은 넉넉한데 밀가루는 없고, 그렇다고 밀가루를 살만한 현금도 없으니 굳이 쌀을 팔아 밀가루로 바꾸는 대신 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끓였다. 쌀 수제비는 농촌에서 추수 무렵, 한철에만 먹을 수 있었던 별미 중의 별미였던 것이다.

 

근대 요리책인 ‘조선요리학’의 저자인 홍선표가 1938년 신문에 발표한 글에도 수제비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 먹는 별식으로 그려져 있다.

 

“여름 중에도 삼복에 먹는 음식으로 증편과 밀전병, 수제비라는 떡국이 있는데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는데 필요한 음식”이라면서 “수제비는 닭국이나 곰국에다 만들어 먹을 때도 있지만 미역국에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했고 “여름철 삼복의 복 놀이 잔치에 수제비가 없으면 복놀이 음식이 아니 되는 줄로 알고 누구나 다 수제비를 먹는다”고 적었다.

 

사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곳곳에서 수제비에 대한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영롱발어(玲瓏撥魚), 또는 산약발어(山藥撥魚)라는 전통음식으로 일종의 수제비다. 다소 어려운 한자지만 발어(撥魚)란 물고기가 뒤섞이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다. 숟가락으로 떼어 넣은 밀가루 반죽이 끓는 물에 둥둥 떠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어우러져 헤엄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산림경제’에 영롱발어라는 음식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메밀가루를 풀같이 쑨 후에 잘게 썬 쇠고기나 양고기와 함께 수저로 팔팔 끓는 물에 펴 넣으면 메밀수제비는 뜨고 고기는 가라앉는데 그 모습이 영롱하다고 했다. 여기에다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넣고 소금, 장, 후추, 식초로 간을 맞추어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고급 메밀수제비다.

 

산약발어는 메밀가루에 콩가루와 마를 섞어서 수저로 떼어 끓는 넣은 후 익기를 기다렸다고 먹는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을 마 수제비였으니 역사 속에 보이는 수제비는 양반과 부잣집에서 별미로 먹던 음식이었다. 수제비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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