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가을향기가 물들기 시작한다.
가을향기가 퍼지면 함께 떠오르는 향이 있다.
바로 가을을 닮은 진한 커피향기다.
커피향기는 가을을 타고 코끝을 더 자극한다.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싶어지는 이 가을
커피도 기계보단 손길이 닿은 향을 찾게 된다.
경기도 양평에 엔로제란 카페가 있다.
직접 커피를 볶아 판매하는 로스터리 카폐로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진한 커피향기와 함께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이야기 소리가
기분좋게 오감을 자극한다.
정마리아 씨는 6년 전 손님으로 찾았다가
커피에 빠져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한다.
중국문화학을 전공했는데 차(茶)를 좋아해
지금도 상해서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차와 커피는 다른 듯하지만 비슷해요.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이 담겨요.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다른 감성이 전해지죠.
같은 환경이라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희노애락이 묻어 나옵니다."
"또 하나의 매력은 손님과의 대화입니다.
핸드드립 커피는 손님의 취향에 맞게
맛을 조절해야 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어요.
원두 사이로 물이 흐르는 동안 대화를 합니다.
커피가 아니라 손님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편하게 커피의 향과 맛을 느끼도록
그 시간들을 활용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낼 수 있을까.
"같은 음식도 불의 세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핸드드립 커피 맛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두에 따라 로스팅 단계를 약-중-강으로 나누고
로스팅한 원두에 맞는 물 온도를 찾아
그 커피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거죠.
여기에 내리는 이의 감성까지 곁들이면
번거롭고 또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제대로 된 커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처음 이곳을 찾은 이현아, 이현주 자매는
카페 앞 계곡에서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과 처음 왔어요.
4시쯤 아기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너무 좋아서 이러고 놀고 있어요.(웃음)
청정 그대로의 느낌입니다."
동생 현주 씨는 언니보다 더 신난 듯하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핸드드립 커피를 마셔본 후에
아! 맛있다. 커피 맛이 이렇구나 느꼈어요.
다음에는 가족 전부와 함께 오려고 해요."
정희원 씨는 일주일에 4번 이상
엔로제를 찾는 단골손님이다.
"커피 맛이 일단 최고예요.
대표님의 감각이 정말 예술이죠.
이곳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인간미 넘치는 대표님입니다.
여기 단골손님들의 특징이 있는데
시간이 나면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합니다.
말 그대로 가족이 되는 거죠.
사람냄새 나는 카페
그게 엔로제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양희태 대표는 9년 전 이 카폐를 차렸다.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며 폐업한 장소여서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다들 망하려고 그러느냐고 하더라고요.
핸드드립 커피 가격도 지금과 비슷했어요.
왜 다들 망한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죠.
아! 게다가 전 커피를 썩 좋아하지 않아요.(읏음)
로스팅은 해 본적도 없었죠.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도전했던 것 같아요."
영화배우 겸 모델인 박재훈 씨가
양희태 대표와 커피원두를 옮기고 있다.
"기본에 충실해야 커피 맛도 좋아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최상위 1% 원두만 사용해요.
여기가 가까운 거리가 아니잖아요.
먼길을 찾아온 손님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려야죠.
손님과 관계도 진실한 마음이 중요해요.
이 기준을 가지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요."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핸드드립 커피를 고집한 이유가 뭘까.
"가장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어요.
제 성격이기도 한데 대충은 못합니다.
느리더라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여기에다 정성까지 듬뿍 들어간
가장 좋은 맛을 찾아 드리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커피보다 더 진한 사람향기를 느끼며
쉬어갔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뭔가 허전하고 또 뭔가 그립다면
따뜻함과 정성이 가득 배인 커피 한 잔과
그보다 더 진한 사람향기를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