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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감성이 숨 쉬는 이화마을

  • 2018.03.30(금) 10:55


한때 껌 좀 씹었을 것 같은
최대한 불량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분들이 있다.

춘천에 있는 골프장 직원들이
서울로 봄 소풍을 왔단다.
위윤미 대리는 한껏 들떠있다.

"교복 세대는 아니에요.
하지만 표정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이화마을도 옛날 모습 그대로고
교복까지 입고 있어서 그런지
80년대 그 시절을 다니는 듯합니다.

저녁에는 혜화동소극장에서
연극까지 보고 갈 생각입니다."



졸리상점 권태석 대표는 3년 전
이곳 이화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3년 전 이화마을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들어 그냥 왔습니다.
동네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다가 교복 대여를 생각했죠.

원래 이 자리는 1965년부터 1987년까지
20년 넘게 야학을 했던 교실이었습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처음에 10벌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600벌로 늘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일부러 찾아오세요."



경복궁 주변에선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문화가 있다면
이화마을에선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문화가 생겼다.

"교복 대여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많이 찾으실지 몰랐어요.

주말엔 400~500명이나 오시곤 했죠.
영화 '친구'를 보면 교복을 입고
골목골목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교복을 입고 동네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큰 듯합니다.
이화마을만이 주는 매력이 있죠.
많이들 구경 오세요."



이화마을은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덕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동네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제가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어요.

그런데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죠."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은
2006년 낙후지역 개선사업으로 진행된
벽화작업 작가로 참여했다가
이화마을을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2012년 최가철물점 대표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던 그가 어떤 이유로
이화마을과 사랑에 빠졌을까.



"이화마을의 역사를 알게 되면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와 과거가 이렇게 잘 공존하는
동네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한 번이라도 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엔 1958년 이후 만들어진 적산가옥
수백 채가 자리 잡고 있는 단지입니다.
건축학적으로도 참 중요하죠.

이 마을이 벽화로 유명해지고
또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벽화가 상징처럼 된 건 안타깝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경관은 최고입니다.
현재와 과거를 함께 보는 셈이죠.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10년 전부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올해가 7년째를 맞습니다. 

600여 년 역사를 품은 낙산산성과
그 아래 자리한 이화동은
해방 이후 주민들의 생활상이 남아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습니다.

이화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또 재조명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화동엔 마을박물관도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사진 자료와 생활도구 등을 전시하죠.

이 냄비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향래 할머님께서 골뱅이를 무쳐
직접 가지고 오신 겁니다.

45년 전 나주에서 올라오면서
챙겨오신 냄비라고 하는데
이 냄비를 보면 무더운 여름날
마을을 위해 고생이 많다면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골뱅이 무침이 생각나곤 합니다.

전 누구나 이화마을에 와서
하나둘씩 사라져버린 감성을 느끼고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0년짜리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화마을의 보물을 찾고 싶은 분들은
개뿔로 오시면 제가 잘 찾아드리겠습니다."



이화마을의 대표적인 상징이던
잉어계단과 해바라기계단은
이제 회색빛 계단으로만 남아있다.

2016년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관광객의 소음과 쓰레기를 이유로
그림을 훼손한 탓이다. 

2006년 벽화작업을 시작했으니
꼭 10년 만에 일이 터졌다.

그렇게 갈라진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못한 채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나가다 만나면 서로 손을 맞잡고
안부 묻던 이웃들은 이제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일본 오사카에서 여행 온
야오이 에미 씨를 비롯한 3명이
지워져 버린 해바라기계단에서
열심히 추억을 담고 있다.

"그냥 평범한 거리를 걸었다면
금방 피곤하고 또 돌아가고 싶었을 텐데
마을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즐거운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미세먼지가 많아 아쉬웠는데
다음에 한국에 오게 되면
맑은 날 다시 놀러 오고 싶어요."



이화벽화마을로 가는 길목에
벚꽃이 나올 듯 말듯 밀당을 하고 있다.

따뜻한 봄바람의 재촉이 이어지면
벚꽃은 겨우내 꼭꼭 숨겨놨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것이다.

누구나 찾아가면 즐겁고
행복한 감성이 숨 쉬는 이화마을은
그렇게 화사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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