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초등학교 졸업식장
6년간 정든 교정을 떠나는 정한진 군은
친구들과 헤어지는 슬픔이 크다고 한다.
졸업식 사진을 보면 누구나
한 손엔 꽃 한 다발을 들고 있다.
끝이면서 또 새로운 시작인 졸업식처럼
어느덧 계절도 긴 겨울의 끝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동네 서촌의 꽃집
라파지블엔 이미 봄이 와있다.
아직 두꺼운 패딩이 필요한 날씨지만
서촌에선 따뜻한 봄 향기가
꽃으로 활짝 피고 있었다.
송수희, 송수민 씨는 친자매다.
4년째 서촌에서 플라워숍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 수민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막연하게 꿈꿔왔는데
그 꿈을 이뤄 함께 일하고 있어요.
저는 가정학과를 전공했고
동생은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플러워숍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희도 가끔 신기해요.
어렸을 때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할머니께서 마당에 정말 다양하게
많은 꽃을 심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
저희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꽃에 관심을 갖게 된 듯해요."
"수민이와 제가 취미도 성격도 비슷해요.
같이 취미생활을 하면 좋겠다 싶어
서로 좋아하는 꽃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같은 재료로 각자 개성과 감성에 따라
전혀 다른 멋진 작품이 나오는 걸 보고
꽃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함께 작업하면 더 행복할 것 같아
그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죠.
가장 먼저 프랑스로 가서
플로리스트 연수 과정을 마쳤고
주변 국가를 다니면서 꽃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생각했죠."
"라파지블을 시작할 땐
둘 다 참 용감했던 것 같아요.(웃음)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따로 숍 운영을 배우지 않았던 터라
뭘 얼마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어요.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하게 도전에 나선 거죠.
다만 저희만의 기준점을 두고
차근차근 저희만의 방식을 쌓아 갔어요.
시행착오도 정말 많았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던 것 같아요."
언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민 씨가
뭔가 생각난 듯 일화를 꺼낸다.
"창업한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손님 한분 한분이 정말 간절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일하던 시절인데
유치원 졸업식에 가져갈 꽃을
오전 9시에 준비해달라고 해서
아침 일찍부터 만들어 드렸어요.
아무 말씀 없이 가져갔는데
오후 4시에 다시 오시더니
꽃이 다 시들었다고
환불을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결국 환불해 드린 적이 있어요.
지금도 종종 그런 분들이 있는데
이젠 많이 단단해 진듯해요.
시간이 지나야만 얻어지는
많은 것들이 있구나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언니랑 가끔 그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힘든 만큼 더 노력하고
또 성실하게 길을 걷다 보니
지금은 정말 많은 분이
사랑하고 아껴주세요.
보통 블로그나 SNS를 보고 주문하는데
꽃을 선물한 고객이나 꽃을 받은 분들
대부분이 감사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열심히 달려가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낍니다.
라파지블은 꽃이 사치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적으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나마 우리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축하 화분용 서양란이나
예단으로 보내는 예단 난의 경우
보자기로 예쁘게 포장한 후
짧고 작은 노리개를 달곤합니다.
여기서 더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언니와 함께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노리개를 단
아름다운 자태의 무용수를 보면서
둘이 함께 이거다! 외쳤죠.
그리곤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난이 한복을 입으면 참 예쁠 것 같아
서울에선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한복 노리개를 찾아냈고
라파지블만의 서양난을 만들어냈죠."
"서촌은 서울에선 느끼기 어려운
서정과 낭만이 숨쉬는 곳입니다.
서촌을 더욱 알리고 싶은 마음에
매년 봄이 되면 주말마다
저희 숍에서 서촌아트마켓을 열어요.
서촌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작가님들이 많아요.
유니크한 핸드메이드 작품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으니
따뜻한 봄이 되면
서촌으로 나들이 나오세요."
송수희 씨는 꽃을 시작하면서
인생에 대한 철학도 배웠다고 한다.
"작은 몽우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또 지는 모습까지 곱고 사랑스러운
꽃들을 바라보면서
저희도 꽃처럼 아름답게 성장해
많은 이들과 함께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다짐하곤 합니다."
"파리에서 꽃 연수를 할 때
Paisible(파지블)이란 단어를 접했죠.
La Paisible(라파지블)은 불어로
평화가 있다, 평화가 머문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평화'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감사함이 느껴지기에
저희 둘 다 망설임 없이
숍 이름으로 선택했죠."
아이러니하게도
꽃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 자매의 손은
거칠고 또 상처도 많았다.
긴 겨울의 아픔을 견뎌낸 후에야
봄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처럼
우리 모두의 인생도
숱한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면서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