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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살림살이 이래서야]③과징금이 고무줄이냐

  • 2013.07.04(목) 15:31

공정위, 깎아준 과징금이 부과액보다 많아
제재받고 또 담합 2년새 10건…"감경조항 손질 필요"

2009년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11개 소주업체의 가격 담합에 대해 시정 명령을 내리고 2263억원의 과징금을 통보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과징금은 27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소주 업계가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에 부응해 온 점을 감안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이듬해 5월 국내외 19개 항공사의 화물운임 가격 담합 과징금도 3000억원이 넘게 부과할 수 있었지만, 각종 감면 규정을 들어 1195억원으로 깎아줬다. 당시 '고무줄 과징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공정위는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3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담합에 가담한 기업들은 10개도 넘는 과징금 감면 규정을 통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지난해 공정위가 깎아준 과징금은 실제로 부과한 금액보다 더 많았다. 공정위에 적발된 후에도 또 담합하다가 걸린 기업도 상당수에 달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24개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은 3989억원으로 전체 과징금 부과액 5105억원의 78%에 달했다. 사실상 담합이 공정위가 매기는 과징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당초 공정위가 산정한 과징금이 1조750억원이었는데, 조정 단계에서 6761억원이 깎였다.

 

지난해 8월 개정한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위반 사업자의 중복 횟수나 고의·과실 여부, 납부능력 등을 감안해 과징금을 결정한다. 기업이 위반을 자진 시정하거나 정부 시책에 따르는 등 협조 움직임이 있으면 20~50% 정도의 과징금이 감면되고, 경제적으로 과징금 낼 능력이 부족하면 면제도 받을 수 있다.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부당이득 환수의 성격 외에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공정위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과징금을 깎아줄수록 기업이 부당이득을 얻기 위해 위반을 반복하려는 유인도 커질 수 있다.

 

공정위가 처음에 매긴 과징금의 절반 이상이 조정·감경되는 관행이 계속되니 당국의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고, 부당거래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은 전액 국고로 귀속되기 때문에 감경분만큼 나라곳간의 재원이 줄어들게 된다.

 

고무줄과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2011년부터 지난 4월까지 공정위가 적발한 66개 부당한 공정거래 중 2개 이상의 사건에 같은 기업이 중복된 경우는 10건이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16개 생명보험 업체들은 2011년 12월 부당한 공동행위로 적발된 이후, 지난 4월에도 9개 업체가 또 담합을 저질렀다. 노틸러스효성과 LG엔시스, 케이씨티 등도 금융 관련 기기를 입찰하는 과정에서 담합 혐의가 적발되 공정위의 과징금을 부과받고도 다시 담합에 가담했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등은 4대강살리기 사업과 영주다목적댐 입찰에서 연이어 담합했고, 동부하이텍과 맛생식품도 두 차례의 부당한 공동행위 건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기업들의 담합을 근절하려면 과징금 감면을 최대한 지양하고 행정제재적 성격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공정위가 위반행위의 반복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과징금 감경의 재량과 감경률을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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