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내세우는 '정상외교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실제로 성사된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이 정부 산하 공공기관장 입에서 나왔다. 청와대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과 함께 이란에 'K타워'를 세우는 사업을 추진중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다.
LH가 주도하는 이 사업에 미르재단이 참여한 것과 관련 청와대 개입이 있는 것 아니냐는 국회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정상외교 성과의 실체를 부인하는 투의 해명이 튀어나온 것이다.
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LH 국감에서 박상우 LH 사장은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해봅시다 하는 단계다. 사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상외교로 맺은 MOU라 하더라도 '이렇게 해보자'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약속하는 것이지 실제로 성사된 비율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의 이 같은 말은 야당 의원들이 LH가 미르재단을 이란 측과의 MOU에 포함시키는 경위를 따지는 중에 나왔다. MOU가 법적 구속력이 높은 계약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 초기 문화콘텐츠 관련 분야를 맡을 미르재단이 신생 단체여도 참여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LH 해명 요지다.
▲ 지난 5월 이란 국빈 방문 당시 박근혜 대통령(사진: 청와대) |
박 사장은 이에 앞서 'K타워 프로젝트 주도 주체가 누구냐'는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 질문에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할 때 관계기관들이 성과 사업, 여러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프로세스가 있다"며 "거기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았고 관계부처 합동회의에서 K타워 프로젝트 주관을 검토해달라는 제안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LH가 오랜 기간 추진한 사업이 아니라 제안을 받으면서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사업 현실화에 1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전날 최경환 의원(국민의당) 등 야당 의원들은 LH가 주관한 이 사업 MOU에 미르재단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날 박 사장은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할 때는 "(MOU이기 때문에) 안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가, 이어 여당 의원들에게는 "K타워는 한류 등 여러 상품을 구성해 가는 민간 교류의 좋은 아이템"이라며 "안할 수 있다는 건 원론적 답변이고 공기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소 엇갈린 답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 당시 LH와 포스코건설은 이란교원연기금공사와 '문화상업시설건설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이란 테헤란에 'K타워'를, 서울에는 'I타워'를 지어 문화교류를 활성화한다는 게 골자다. 정부 정상외교 포털에 공개된 MOU에는 미르재단이 문화콘텐츠 부분을 담당하는 주체로 명시돼 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국감에서는 K타워 MOU의 영문본과 한글본 사이에 미르재단의 위상이 다르게 표현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영문본에는 미르재단에 대해 '문화교류증진을 할 기관들 가운데 하나(One of the organizations to promote Korean cultural exchange)'라고 돼 있지만 한글본에는 같은 내용이 '한류교류증진의 주요 주체'로 표기돼 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번역 과정의 실수"라며 사과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의도된 변조'라며 공세를 가했다. 이해찬 의원(더민주)의원은 "정상외교 포털에 올려진 것과 달리 오늘 LH로부터 제공받은 한글본에는 '주요 주체'라는 표현이 없다"며 "LH가 고의적으로 미르재단을 격상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LH 국감은 주거복지, 재정문제 등 공사 본연의 문제가 주로 다뤄졌던 예년과 달리 미르재단 관련 사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 때문에 감사 질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 미르재단의 쟁점화를 염두에 둔 여야 초선의원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현아 의원(새누리당)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초선으로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지만 여러 의원들의 질의가 반복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질의시간이 부족한 만큼 주거복지, 도시재생 등 필요한 부분이 충분히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임종성 의원(더민주)은 "저도 초선이지만 해서는 안될 말"이라며 "의원 개개인에 권한이 있는데 그걸 제한하자는 말은 불필요한 얘기"라고 반발했다. 양측 설전을 지켜본 조정식 위원장은 "각각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발언을 서로 존중해 달라"고 중재하며 국감을 진행했다.